연중 32주일. 열왕기 상,17,10-16; 히브리 9,24-28; 마르코 12,38-44
옛날이야기 하나 해 볼까 합니다. 두 수도자가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 명은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고 믿는 사람이었고, 또 한 명은 ‘모든 걸 버리는 것을 신봉’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처럼 두 명은 지향하는 영성적인 방향이 달랐습니다. 그들은 온종일 길을 걸으면서 자신이 보는 영성에 대해 토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저녁이 되고 강둑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버리는 것을 신봉하는 수도자는 돈이라고는 한 푼도 없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에게 강을 건네 줄 뱃사공에게 요금을 지불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왜 걱정을 하겠나? 여기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밤을 지내자구. 내일 요금을 내 줄 친절한 사람을 꼭 만나게 될꺼야!” 라고요. 그러자 가지는 걸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 말했습니다. “강 이쪽에는 마을이라곤 없어. 작은 마을도 오두막도 없다고. 이러다간 들짐승한테 잡아먹히거나 추워서 얼어죽을꺼야. 강 건너편에 가면 안전하고 편안하게 밤을 지낼 수 있을꺼야. 나에게 돈이 있어.” 라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가진 것을 신봉하는 수도자의 도움으로 일단 강을 무사히 건너자, 돈을 낸 수도자가 의기양양하게 말했습니다. “자~돈을 지니고 다녀야 하는 이유를 알겠지? 그 돈으로 나는 자네 생명과 내 생명을 구할 수 있었잖아? 내가 자네처럼 버리는 것을 중시하는 사람이었다면 우린 어쩔 뻔 했어?” 라고요. 그러자 다른 이가 말했습니다. “물론 고마웠네. 하지만 우리를 무사히 건너오게 한 건 자네의 포기의 모습에서 비롯된거야. 강을 건너기 위해 뱃삯을 내기 위해 자네 돈을 내놓아야 했거든? 안 그런가? 가만 보니까 난 고생을 별로 한 게 없더라고. 늘 마련이 되니까..” 라고요.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아시겠습니까? 우린 항상 쌓는 것을 중시합니다. 재산도, 지식도, 정보도, 남보다 더 가지려고 눈에 불을 킵니다. 하지만 정작 그것을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은 제 때에 그것을 버릴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하는데요. 여러분은 과연 그런 삶을 살고 계십니까?
오늘 독서와 복음은 하나의 이야기로 일관합니다. 없는 가운데서 내놓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엘리야 예언자 시대에 있던 과부는 먹을 것이 없었으나, 없는 가운데서 엘리야에게 먹을 것을 내어 놓으니 기름과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는 기적의 삶을 삽니다. 그리고 헌금을 내는 과부도 없는 가운데 냈기 때문에 진정한 헌금을 했다고 칭찬을 받습니다. 그리고 2독서에서 나오듯 예수님은 단 한번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음으로 많은 이들의 죄를 구원하십니다. 이런 것을 보며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뭔가를 내놓는다는 것은 가지고 있는 것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버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 버리고 포기합니까? 진정한 것을 얻기 위해서 그런 행위를 합니다. 마찬가지로 매일매일 잘 살려고 우린 그렇게 애를 씁니다. 나의 생각도, 시간도, 돈도, 에너지도 그렇게 내 놓으면서 모든 것을 바칩니다. 왜 그럴까요? 여러분 달력을 보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달력에는 무슨 요일부터 시작합니까? 그렇습니다. 오늘처럼 빨간날, 일요일부터 시작합니다. 모든 날의 시작을 알립니다. 이런 주일미사를 나오는 이유에 대해 물어보면 많은 이들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일미사에서 힘을 받아 일주일을 살 수 있다’ 고요. 그런데 전 반대로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진정한 주님의 날은 버리는 날이라고요. 매 주의 시작을 당신께 바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될 때, 나머지 평일을 당신으로 인해 채워주심을 목격하는 날이라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상도동 본당 교우 여러분!
우린 그렇게 완전히 내어 놓음으로 완전한 충만함을 얻습니다. 없는 가운데서 무언가 낼 수 있었던 힘은, 그분의 대한 무한한 신뢰와 믿음에서 비롯될 수 있었는데요. 과연 여러분은 나를 바치는 모습이 어느 정도이십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