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시몬과 타대오 축일. 에페소서 2,19-22; 루카 6,12-19
평화신문, 평화방송 가톨릭 신문 등을 보면 어떠어떠한 일을 하셨다는 신부님, 수녀님들의 사진과 기사보도가 나옵니다. 거기에는 제가 아는 분도 나오고, 제 후배신부님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서 ‘야~ 좋은 일 하시는구나. 유명해지셨네~’ 하는 생각도 합니다만, 한편으로 인간적으로 이런 감정에도 휩싸입니다. ‘그럼 나는 뭘 했지? 뭔가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왠지 모를 조바심도 납니다.
오늘 축일을 맞은 시몬과 타대오 성인이 무엇을 하신 분들인지 잘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시몬 성인은 가나 출신이고 혁명당원이었다는 말만 나오고 있고요. 타대오 성인은 최후 만찬 때 “주님, 저희에게는 주님 자신을 드러내시고 세상에는 드러내지 않으시겠다니 무슨 까닭입니까?” 라고 여쭈어본 사도로 알려져 있을 뿐입니다. 이들은 그야말로 베드로 요한과 달리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한 사도들입니다. 이른바 비주류 성인들의 축일을 지내면서 무슨 생각이 떠오르십니까? ‘그래도 예수님 곁에 있었던 열 두 제자라지만 너무 비중이 없는 것을 보아 그리 중요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왜 축일을 지내는지 모르겠네?’ 하고 여기실 분도 계실지 모릅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그 분들이 무엇을 하고 지냈는지 정확히 잘 모릅니다. 게다가 루카 복음에 보면 일흔 두 명의 제자들을 파견 보내신 적도 있었습니다만, 이들이 정확히 무슨 사명을 수행 했었는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저 제자들이고 주님의 일을 수행했었다는 것만이 알려진 것이 전부입니다. 어쩌면 우리도 후세 사람들에게 그렇게 알려질지 모릅니다. ‘그 형제, 자매는 하느님을 열심히 믿은 사람이었다.’ 라고요. 하지만 그렇게만 기억된다 하더라도 우리가 할 일은 다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1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오잖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라고요.
우린 그렇게 누구에게 알려지고 유명세를 타기보다 그 분 안에서 녹아드는 삶, 하느님 나라의 전체적인 균형이 이뤄질 수 있도록 보탬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업적이나 명함을 내미는 사람들 속에서, 오히려 글이나 말로 일일이 기록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미 우리를 기억하고 계신 그분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 될 때, 부차적인 것에 얽매이지 않는 진정한 삶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나는 당신과 더 가까워져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