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9주 목요일

2009. 10. 23. 오후 1:3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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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연중 29주간 목요일.

우리는 각자 자주 짓는 죄가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를 레파토리라고 일컫는데요. 자주 짓고, 거기 걸려 넘어지지만 그 안에서 맴돌고 마는 자신을 바라볼 때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한심합니까? 아니면 그저 주저앉고 맙니까? 아니면 또 잊어먹고 삽니까? 이런 사태를 보면서 그저 자신에 대해 자괴감을 겪고 마는 것을 보곤 하는데요. 예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우리라는 비커 안에는 흙탕물이 담겨 있습니다. 가만히 놔두면 그 흙탕물은 살며시 가라앉고 아래는 진흙이 위에는 맑은 물이 됩니다. 평상시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나를 건드리거나, 자극하게 되면 밑에 깔려 있던 진흙은 피어오르고 맙니다. 그러면서 나는 또 돌변하게 되는데요. 우리는 이 진흙을 꺼내야만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 터인데 대부분은 나의 내면을 보기 싫어하기에 그 안의 것을 꺼내기 보다는 그저 주저앉히고 누군가 나를 자극하지 않기만을 바랍니다.

오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당신이 말씀하시는 분열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재정립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당신 안에서 새로운 질서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저 맴돌기만 하였던 내 안의 것을 벗어나 주님의 방식대로 행해야 한다는 질서 말입니다. 독서에서 이야기하는 “죄에서 해방되고 하느님의 종이 되어 얻는 소득은 성화로 이끌어줍니다.” 라는 말씀 말입니다. 물론 이제껏 살아온 패턴을 무너뜨리고 새롭게 재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는다는 하느님을 어제 만난 하느님과 오늘 만난 하느님, 그리고 내일 만날 하느님이 계속 같게만 느껴진다면 우리 안에 진보는 없는 셈입니다. 영원불변의 하느님이시지만 내가 만나는 그분을 늘 새롭게 만날 때, 비로소 발전되어 있는 그 분 안에 날 만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새로운 계명을 주셨고 우린 그것을 늘 새롭게 받들 때 이 삶이 진부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의 나라는 지금도 발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이렇게 커 왔듯이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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