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7주간 토요일

2009. 10. 10. 오전 12: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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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연중 27 주간 토요일. 요엘 4,12-21;루카 11,27-28

부러움에 가득 찬 사람이 있습니다. 남이 뭔가 하는 것이 좋아 보이고 남이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며 ‘저게 내 것이면 합니다.’ 하지만 정작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심통만 부리고 있습니다. 내 것이길 바라면서 살아온 생활은 분명 괴로운 나날이었을 것입니다. 뭐 하나 이뤄진 것이 없다고 여기니까요. 하지만 이런 사람이 나라는 생각, 혹시 해보지 않으셨습니까?

오늘 복음은 참 짧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며 어떤 여자가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하며 예수님의 어머니인 성모님을 부러워합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여깁니다. 아들이 번듯하게 자라서 설교도 하며 다니고 따르는 사람들도 많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의 세계로 들어가 그렇게 부러워하는 여인에게 이렇게 물어보면 어떨까요? “정작 그렇게 부러워하는 당신은 그동안 무엇을 하셨습니까?” 라고요. 얼떨결에 질문을 당한 그녀는 아마 온갖 핑계를 늘어놓을 것입니다. 이유를 댈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선물을 주셨습니다. 누구는 그것을 발견하여 잘 살리는가 하면, 누구는 그저 부러워하다가 일생을 마치는데요. 신앙인이라면 우린 각자 자기 안에 들어가는 연습을 해 봐야 합니다. 진정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하느님께서 내게 무엇을 주셨는지 바라보는 연습 말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도 복음 마지막에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하시지 않았습니까? 말씀을 듣고 지키는 방법은 실로 다양합니다. 수도자처럼 자신을 바치거나 생활 중에서 주님을 드러내는 방법 등 참 많습니다. 그런데도 우린 남이 해놓은 것을 그저 부러워만 하고 좋게만 여깁니다. 내 안의 것은 보려하지 않은 채 말입니다.

어제 길가에 나가보니 트럭에서 가을 국화를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국화는 자기 때에 맞춰 피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국화는 봄, 여름, 겨울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나올 때를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 내 인생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단순한 부러움보다 진정 하느님이 주신 것을 찾아갈 때 당신이 원하시는 바를 나는 하고 있을 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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