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예로니모 사제 기념일

2009. 9. 30. 오전 7: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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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예로니모 사제학자 기념일. 느헤미야 2,1-8; 루카 9,57-62

세상에 태어나면 어른들은 강요하는 투로 이런 말을 합니다. ‘세상에 큰 인물이 되라.’ 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결국 인물이란 어떤 사람을 말하겠습니까? 따지고 보면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는 인간을 말합니다. 세상에서 보통 인물이라 하면 기운세고 머리 좋고 권세있는 사람인데 알고 보면 그런 사람들 때문에 세상은 늘 허덕여 왔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인물이 되고자 한다면 어떤 인물이 되어야 할까요?

오늘은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입니다. 예로니모 성인은 성서학자이며 수덕가로서 서방 교회의 4대교부 중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라틴어와 그리스어 히브리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정도의 언어감각이 있었기에 어릴 때부터 세속적인 학문에 전념하지만 이내 사도들과 순교자들의 성지인 카타콤바를 방문하면서 신앙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이내 성서 역사상 불가타 번역을 하기에 이릅니다. 자신의 그 재능을 자기만족에 쓸 수도 있었겠지만 그 자신이 하느님의 사람으로 회두하고 오게 된 계기는 무엇이겠습니까? 참된 복음적인 삶이 자신을 구원해 준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에 무슨 이야기가 나옵니까? “나를 따라라” 하는 주님의 음성에 따르겠다는 사람들은 “집에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게 허락해주십시오” 라 합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이고 그 정도는 기다려 줄 수 있지 않는가? 반문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복음은 우리에게 먼저 살아 나가야 할 정신을 알려줍니다. 오늘 알렐루야에 뭐라고 나왔습니까? 바오로가 한 말 아닙니까? “나는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머물려고 모든 것을 해로운 쓰레기로 여기노라” 라고요. 다른 것에 얽매이지 않고 먼저 잡아야 할 것을 찾는 정신! 그것이 진정 복음의 자세일 것입니다.

앞서 어떤 인물이 되어야 하냐고 여쭤보았습니다. 결국 제일 좋은 삶은 하느님께 최선을 다하며 가족과 동네 사람들을 사랑하는 삶이야말로 최고의 삶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것 없이 세상이 말하는 인물론에 치중하는 삶을 살다보면 물을 움켜쥐는 듯한 느낌처럼 대단히 허한 삶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텐데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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