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신심 미사. 요한 복음 2장*
우리는 하루에 몇 마디나 하는 지 모를 정도로 말을 많이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 이 언어라는 것도 두 가지 범주로 나뉜다고 합니다. 하나는 지시 정보적 언어입니다. 이는 말 그대로 정보를 가르쳐주는 언어입니다. 네비게이션처럼 ‘이리 가라, 저리가라.’ 하며 지시하고 알려주는 기능을 말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통교적 의미의 언어입니다. 이것은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의미를 전달하는 언어입니다. 예를 들자면 “나는 너를 사랑한다.” 라든가 “용기를 내세요” “당신을 할 수 있어요” 따위의 표현이 그것을 뜻합니다. 언어가 이런 두 가지 범주로 나뉘어있다면 하루 중에 우리 자신은 지시 정보적 언어를 더 많이 쓰고 있습니까? 아니면 의미를 전달하는 통교적 의미의 언어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까? 이 실험을,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는 가정에서 해보니 답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지시적인 말만 하더라 고백하였고 어느 주부는 아침에 깨우는 것부터 시작하여 학교를 보내고 저녁을 차리기까지 ‘이거해라’ 라는 말만 하고 있으니 아마도 자기아이들이 엄마와 대화를 하지 않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는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엄마와 자녀의 관계는 과연 어떤 만남의 관계이겠습니까? 어떠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이이겠습니까? 오늘 성모님은 잔치집에 포도주가 떨어지니까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포도주가 없구나” 재미있게도 직접적으로 표현 않으시고 ‘주님의 아들이시니까 당신이 알아서 해주세요.’ 라는 뜻으로 돌려서 표현하십니다. 자녀가 생각하고 알아서 잘 나아가게끔 판단을 기다려 주는 모습은, 지시적인 언어에서 오는 삭막함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숟가락과 젓가락이 제 때 잘 쓰여야 식사 시간이 즐거울 수 있듯이 말할 때도 성모님이 이웃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예수님이 헤아릴 수 있게, 받아들이실 수 있도록 잘 표현했기에 계획되지 않은 기적이 이뤄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작은 표현 하나에서부터 시작하여 기적을 만날 수 있습니다. 변화가 이뤄질 수 있습니다. 우리도 그런 시간을 어서 만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