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1주간 화요일. 데살로1서 2,1-8;마태오 23,23-26
여러분은 신앙인으로 어떤 삶을 사는 것이 훌륭한 삶이라 여기십니까? 그것을 잘 모르겠다면 바리사이, 율법학자들의 모습을 한 번 보겠습니다. 그들은 정말 가르침을 베풀며 사는 열심한 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가만히 보면 그 열심하다는 바리사이들, 율법학자들에게 매몰차게 대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많이 알고, 가르침도 베풀면서 사는 이들이 뭐가 잘못되었다고 하시는 지 고개가 갸우뚱거립니다.
정말 그들은 열심히 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거짓이 숨 쉬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전 맹자의 마지막 편인 ‘진심하’ 편에 향원들을 서술하면서 문득 바리사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는데요. 맹자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첫째. 말과 뜻은 고상하지만 행동은 그렇지 못하면서 말끝마다 옛 사람들의 훌륭한 덕과 전통을 들먹거린다. 둘째. 행동은 독불장군처럼 거들먹거리지만 많은 이들의 칭찬을 받으려 노력한다. 셋째. 겉으론 흠잡을 데 없지만 속으로는 세속적인 가치들을 추구하고 있으며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과 칭찬을 듣고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성인의 도와 거리가 멀다. 라고요.
예수님은 거짓을 미워하셨는데요. 그것도 비슷하지만 아닌 것을, 아예 아닌 것보다 더 미워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더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바리사이들은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 삶이 아니라 사람을 기쁘게 하려 했기에 문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찾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찾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찾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을 시험하시는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려는 것입니다.”
사제로 살면서 사목하기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건 신자들의 기분을 맞추며 살아야 하는가? 아니면 하느님의 뜻을 이루면서 자연스럽게 모두가 기쁨에 젖어가야 하는가? 하는 고민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참 기쁨은 금방 쉽게 왔다 가버리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진정 당신이 원하시는 방법을 찾을 때 우린 성화되어 가는 삶을 만날 것입니다. 그런 나를 만나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