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1주간 수요일.
각 수도원마다 제3회 회원들을 모집하고 교육 시켜 종신서원을 받게 합니다. 그 이유는 개인적인 신앙을 키워주는 것도 있지만 더 깊게 들어가도록 이끌면서 신앙이 잘 커 갈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함인데요. 제3회 회원들을 책임진 어떤 신부님의 일화를 소개하겠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집에 가려는 이 신부님에게 어떤 자매님이 잠시 안수기도를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당연히 신부니까 해야겠다는 생각에 두 손을 머리에 감싸고 기도를 하는데, 문제는 도무지 기도문이 생각나지 않더랍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평소 수도원에 계시기에 교우들과 마주칠 기회가 적었던 탓에 강복줄 기회가 없었던 것인데요. 몇 초가 흐른 후, 문득 ‘아~ 그렇지’ 하는 작은 탄성과 더불어 기도가 생각났다는 듯이 입에서 절로 이런 기도가 흘러 나왔습니다. “주님 은혜로이 내려주신 이 음식과 저희에게 강복하소서~” 절대로 저는 수도원 신부님을 희화화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만큼 하는 일이 다르다는 것을 말씀드리는건데요.
이처럼 수도원 신부, 교구 신부의 하는 일은 다르지만 하느님의 일을 하는 데에는 같은 종점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가고 있으신지요. 오늘 독서에서는 바오로가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면서 밤낮으로 일하면서 하느님의 복음을 여러분에게 선포하였습니다. 우리는 또한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는 천막을 짜며 다른 이들과 비슷한 고생을 하면서 복음선포를 하는데요. 사람은 다르지만 각기 다른 역할을 하며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이었겠습니까?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 지 알았던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어느 정도 하다 보면 휘둘리지 않는 때가 다가옵니다. 처음에는 배우기에 급급했지만, 점점 예수님처럼 율법을 하나로 꿰뚫으면서 진정한 것을 하나로 통합할 줄 알고 통괄하는 자세가 나오는데요. 그때가 오면 비록 서로 다른 일을 하더라도 결국에는 같은 일을 하고 있음을 서로 알게 됩니다. 우린 직업도 하는 일도 서로 다릅니다만, 믿음으로 모였기에 각기 맡은 역할을 존중해 줄 수 있는데요. 바오로는 기뻐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음” 을 말이죠. 하느님의 모상인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바라봐 주고 있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