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0 주간 화요일. 판관기 6,11-24ㄱ; 마태오 19,23-30
대화를 할 때 여러분은 담화를 나누고자 하는 사람이 어느 정도의 거리에서 나하고 대화하길 원하십니까? 1m앞? 5m앞? 10m ? 얼마나 떨어지고 얼마나 가까워지길 바라십니까? 가능하면 1m 이내겠지요? 그럼 주님하고 기도할 때 당신이 나의 기도를 들으실 수 있도록 얼마나 가까이서 속삭이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신과의 그 거리를 한번 가늠해 보셨습니까?
오늘 기드온이 하느님께 불평을 터뜨리자 하느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겠다.” 라고요. 이 문장을 아시는 분은 이 말씀이 그저 기드온에게 처음 하신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아실 것입니다. 야곱에게도, 모세에게도, 여호수아에게도 그리고 바오로에게도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린 기도하면서도 당신과 얼마나 가까운 거리에서 살고 있는 지 까맣게 모를 때가 많아 보입니다. 복음에서 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다는 그들이건만 이들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겠습니까?” 과연 제자들은 무엇을 또 받고 싶었을까요? 그저 주님으로 자신을 채우기엔, 주님의 모습이 너무 작게만 여겨진다고 보았기 때문일까요?
엄마에게 있어 자식은 모든 것입니다. 재산을 빼앗기고 남편이 죽더라도 그저 품에 안고 있는 자식 하나만 있으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그런 자세가 있었기에 지금 이토록 버텨오신 어머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럼 우리 신앙의 자세도 다시 바라봐야겠습니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고 기도도 하고 여러 활동도 합니다만 그 계심의 거리가 과연 얼마나 가까운 정도인지 헤아리진 못하고 사는 것은 아닌 지 말입니다. 그리고 내 마음에 오신 주님의 충만함을 왜 아직도 엄청나게 큰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지 말입니다. 그 분은 내 곁에서 나와 함께 더불어 생활하십니다. 당신과의 거리를 깨달을 때 그분의 사랑을 더 깊게 헤아릴 것이고 나도 기쁜 마음으로 당신을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