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17 주간 화요일. 탈출기 33,7-34,28; 마태오 13,36-43
여러분은 하루 중에 거울을 몇 번이나 보십니까? 오늘도 일어나셔서 씻고 나오셨다면 거울을 보셨겠구요. 또 앞으로도 무엇을 하다보면 볼 것이고요. 자매님들은 손거울을 갖고 계시니 그 빈도수는 아마 세어보지 않아도 엄청날 것입니다. 그런데 매일 똑같은 얼굴인데도 계속 들여다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저 현상유지라도 해야 해서요? 아니면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 두려워서요? 그런데 우리가 진정 거울을 보는 이유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겉모습의 얼굴뿐만 아니라 내 안의 것도 들여다봐야 하는데요.
오늘 모세는 하느님께 무릎을 꿇고 아룁니다. “주님 제가 정녕 당신 눈에 든다면 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가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백성이 목이 뻣뻣하기는 하지만 저희 죄악과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저희를 당신 소유로 삼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고요. 부족한 영혼들인 것은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백성의 미래를 위해 부탁을 드리고 있습니다. 복음에서는 세상 종말을 이야기 하며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하십니다. 내가 이 신앙의 길을 잘 가고 있는가 살펴볼 수 있는 길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생활을 그저 관대하게 보지 않는 것입니다. 논어에서 공자는 이렇게 탄식합니다. “너무하도다! 나는 아직까지 자기의 허물을 보고 자신을 반성할 줄 아는 사람을 보지 못했도다.” 고요. 보통 사람들은 남의 허물을 보면 기다렸다는 듯이 충고를 합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허물은 보아도 반성하거나 고치는 사람이 드뭅니다. 그냥 넘기거나 자신에게 아량을 베풀기 바쁩니다. ‘그럴 수 밖에 없었어’ 라고요. 그야말로 남의 티는 보면서 자신의 들보는 보지 않으려 합니다. 이런 영혼들이라면 신앙생활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자신의 얼굴을 보는 거울을 볼 때마다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제가 잘 살고 있습니까? 매일 달라지는 정화된 삶을 살려고 애쓰고 있습니까? 그 변화된 삶이 겉으로 드러나게 해주십시오.’ 라고요. 분명 이렇게 계속 되내이고 실천한다면 우린 당신의 도움으로 표정부터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