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5주일미사. 아모스 7,12-15;에페소 1,3-14; 마르코 6,7-13
찬미 예수님. 일주일 동안 교우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살다보면 가끔 방을 치울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사간다고 짐을 옮겨야 할 때도 생깁니다. 그런 때에 내가 가진 수 많은 짐들을 보며 무슨 생각이 떠오르십니까? ‘다 필요하고 중요한 것들이야’ 라는 생각이 드십니까? 아니면 ‘쓸데없는 게 왜 이리 많지?’ 하는 생각이 드십니까? 필요없어 보이는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또 막상 버리려고 하면 주저하게 되는 것이 또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여러분은 살면서 남기고 쓰는 흔적들을 보며 무슨 느낌이 드시는지요.
오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더러운 영을 쫓으라면서 파견의 명령을 내십니다. 그러면서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 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신발은 신되 옷도 두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전 사막의 교부들이란 분들이 있었습니다. 이 분들은 세속을 떠나 광야로 나아가 동굴 속에서 살았습니다. 은둔의 삶을 살았지만 진정 그들이 바란 것은 진정한 하느님의 뜻은 무얼까?를 기도하고 탐구한 이들이었습니다. 우리가 비록 세속을 떠나 살 수는 없더라도 우리가 따라야 할 정신은 있습니다. 그것은 사도행전 4장 12절에 이런 말씀이 나오는데요.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 라고요. 참으로 우리가 이 삶을 잘 살기 위해서는 다른 부수적인 것들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주님의 이름으로 내가 살고 있는가? 아닌가?’ 하는 것을 바라봐야 할텐데요. 2독서인 에페소서에서 나와 있듯이 바오로가 보낸 서간에 보면 모든 편지의 시작인사는 비슷하게 시작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라고요. 이 인사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결국 주님의 이름으로 살아갈 때 모든 영광이 이루어진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주님은 오늘 1독서를 통해 당신의 과감성을 보이시는데요. 아모스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다. 나는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다. 그런데 주님께서 양 떼를 몰고 가는 나를 붙잡으셨다. 그러고 나서 말씀하셨다.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여라’” 우리는 살면서 여러 가지 기준을 세웁니다. 전공이 무엇이고, 성격이 어떠하며, 용모는 어때야 한다는 그런 눈높이 말입니다. 그런데 이와 다르게 당신은 과감성이 보여집니다. 가진 것도, 배운 것도 많지 않지만 오직 당신의 이름으로 굳세어진 사람에게는 많은 것을 믿고 맡기십니다. 그리고 맡겨진 그 사람도 기쁨과 충만함 속에서 사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사랑하는 이태원 본당 교우 여러분 !
살면서 참 여러 가지가 필요한 것처럼 여겨집니다. 저도 제 방을 보면 그렇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도 슬며시 생깁니다. ‘다 신자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거야. 성경 공부하려면 볼 책이 얼마나 많은데?’ 라고요. 하지만 꼭 그렇진 않다는 것을 전 압니다. 그래서 강론과 현실이 일치되기 위해 전 이 강론을 준비하고 나서 대대적인 짐정리를 단행하였습니다. 과감하게 필요없는 것들을 정리하였습니다. 그러고 나니 제 자신이 가벼워진 느낌이 들더군요. 아마 그런 비어있고 가벼워진 곳에 당신께서 임하시어 절 채워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런 믿음과 확신 속에서 당신의 이름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임을 여러분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