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3 주간 화요일. 창세기 19,15-29; 마태오 8,23-27
우리들 대부분은 평상시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성당도 다니고, 미사도 나오고 기도생활도 하고 시장에서 물건도 사고, 수다도 떨고 말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급박한 상황을 맞이하거나 위기 상황에 봉착하게 되면 그 때부터 달라집니다. 예전에는 평안한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불안감에 휩싸여서 남을 헐뜯기 시작하고 좋지 못한 방법으로 이 순간을 어떻게든 탈피하려 합니다. 여기까지 제 말씀을 들으신 어떤 분께서는 순간 이런 말씀을 하실 것입니다. “그거 당연한 것 아닙니까?” 라고요. 그렇습니다. 그것이 밖의 사람들, 즉 믿지않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인이라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다가오는 이 현안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요?
오늘 독서와 복음에는 그야말로 스펙타클한 재난영화를 방불케 하는 장면이 연출됩니다. 롯의 가족은 유황불을 피해 소돔과 고모라를 탈출해야 하는 사태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갑자기 풍랑을 만나 죽게 되었다고 아비규환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아무 일 없듯이 평안한 분이 계십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혼을 내십니다.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순간 망치로 맞은 듯한 느낌이 듭니다. “왜 겁을 내다니요? 지금 이 상황을 보세요? 내가 안 그렇게 생겼나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우린 중요한 것을 빼먹고 있었습니다. 나의 인생이 지금까지 누구와 함께 하고 있었는지를 말입니다.
‘잘하면 내 탓, 못하면 조상 탓’을 말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진정 나를 지금까지 이끌어주신 감사할 분을 우린 위기상황에서 그분의 이름은 부르지만, 늘 그분과 함께 있었음은 과감하게 잊어먹습니다.. 그럼 예수님이 평안한 상태를 갖고 계실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건 현실속에서 모든 것을 내 방식대로 얻겠다는 마음이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린 현실을 살지만 그 다음 세상도 살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작은 위기를 겪어내는 방식을 터득한 사람은 긴급함 속에서도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남들이 쉽게 따라하지 못하는 평안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지경에 다다라야 합니다. 신적인 삶을 이 세상에서 누릴 줄 알아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