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1주간 월요일

2009. 6. 14. 오후 11:49:30

글자

연중 11 주간 월요일. 고린토 2서 6,1-10; 마태오 5,38-42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 무언가를 드러내고 싶듯이, 하느님 앞에서도 그 무언가를 드러내놓고 싶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드러납니까? 기도하는 나를 본다거나,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뿌듯해 하는 나를 볼 수 있습니다. ‘난 참 바르다.’ ‘열심히 생활한다’ 는 것을 입증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정작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상황, 극적인 상황의 벽에 부딪히게 되면 그때부터는 예전의 모습에서 볼 수 없었던 나를 만납니다. 굳어지는 나를 발견합니다. 그러면서 온갖 이유를 대지요.

 

오늘 복음 같은 경우가 그렇습니다.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요구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주어라.” 는 것 말입니다. 힘든 요구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여지가 아닌데요?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예전 사막의 교부인 압바 팜보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대에게 마음이 있다면 그대는 구원받을 수 있다.” 라고요. 여러분 영성적인 마음을 갖고 싶습니까? 그러면 상대와 동감할 수 있는 마음, 즉 사랑하는 것에 감동을 느끼도록 허용하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그런 마음이 있다면 난 구원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마음을 여는 자체가 나를 살려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에게서 받을 수 있는 지, 나의 선함을 기억할런지 계산하고 있는 나를 보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열린 내 마음 자체를 보시고, 그 마음때문에 나는 하느님께로 갈 수 있습니다.. 부서진 나의 마음이 그런 행위로 인해 하느님만이 발견하실 수 있는 참된 평화로 인도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열린 마음이 진정한 주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고,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도 있습니다. 오늘도 많은 대화들이 오갈 것입니다. 마음이 열려있다면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 중에서도 건질만한 것이 있을 것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그걸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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