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 6 주간 수요일
예비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성경공부를 가르치는 분들이, 어떤 때에 만족을 느낄 수 있을까요? 어쩌면 ‘만족’ 이라는 열매가 맺히는 것을 보지 못할 때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나에게 교육받은 사람이 나중에 어떻게 사는가?를 끝까지 보지 못하는 분들이기에 마치 불행하게 여겨질 수도 있을텐데요. 그래서 ‘나의 노력이 헛된 것은 아닐까?’ 하고 자문할 수도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오늘 복음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나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에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오늘 1독서에도 바오로의 말을 듣고 나서 사람들은 이런 반응을 보입니다. ‘어떤 이들은 비웃고 어떤 이들은 그 점에 관해서는 다음에 다시 듣겠소’ 하고 말하였다. 학생들과 청년들을 지도하면서 느끼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교리를 하고 시간과 공을 들이지만, 결국 한 주일에 얻어가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 날 교리 내용의 10% 라도 제대로 알까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알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교리시간에 떠들고 미사시간에 장난치고 하면서도 나중에 커서 ‘아!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내가 컸기에 지금에 이를 수 있었구나. 교회의 배경 속에서 자랐기에 내가 이만큼 하느님께 감사하고 살 수 있었구나’ 만 알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많다” 하신 예수님, 그러나 지금은 우리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고 무슨 말인지 모를 것이란 것을 아셨던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나는 인간적인 욕심으로 신앙을 얻으려 했던 것은 아닌가 여겨봅니다.
그동안 다른 신비적인 차원이 있음을 알아도 내 욕심으로 모든 것을 이뤄야 한다고 여겼던 것도 사실이었고, 대화를 하면서 그 사람에게 나의 뜻이 모두 전달되기를 바랬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시간과 여지를 기다려주시고 마련해주신 그분의 배려심 속에서, 우리 또한 자녀를 키워내는 집안의 교육자로서 그분의 마음을 헤아려 봐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