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5주일미사

2009. 5. 9. 오후 1:4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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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5주일미사.


 찬미 예수님. 일주일동안 교우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여러분은 이런 단어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고여있음’ ‘안주(安住)’ ‘머무름’ 따위의 단어 말입니다. 대단히 부정적인 단어로 생각되지 않으십니까? 변화되어 가는 이 시대에 뭔가 앞서 나가지 못하고 그저 가만히 물 고여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괜시리 ‘이러다 발전이 안되는 것이 아니냐?’ 하는 시각이 들 수도 있는데요. 그런데 세상에는 모든 것이 변화되어야 잘 되는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떤 것은 안주하고, 고여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것도 있기 때문인데요. 여러분도 알 수 있는 예를 들어본다면 벼농사 지을 때 못자리에 물이 고여있는 상태가 바로 그러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예전 중국의 남북조 시대의 승려 설차화상은 모내기를 하면서 이런 시를 지었습니다.


푸른 모 쥐어 논에 가득 심고

고개 숙이니 물속의 하늘이 보이네

마음이 맑고 깨끗하니 비로소 도를 이루고

뒷걸음치는 것이 원래 앞으로 나아가는 것


이라고요. 괜히 유별나고 특별한 삶을 가져야만 도를 이루는 것이 아니고, 뒷걸음치는 것이 퇴보의 모습처럼 보일 지 모르지만, 맑고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 속에서 참다운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긴데요. 모는 물이 항시 그 자리에 있어야 잘 자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도 그런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라고요.


 머무름은 그분과 나의 상태를 말해줍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모를 때, 우린 그분과의 머무름 속에서 실제적인 답을 얻곤 하는데요. 그래서 막 서품을 받고 본당을 나가야 하는 새 신부님들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정주(定住)’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일정한 곳에 자리잡고 살면서 그 곳을 제대로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멀리 나가지도 말고, 괜히 다른 곳에 뭐가 있나? 궁금해 하지도 말고, 머물고 있는 동네에 충실하면서 그곳 신자들이 필요한 것을 깨닫게끔 하기위해 정주하게 만드는데요.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느님과 가까워지고 싶다면 이런 머무름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얼마 전 어버이의 날을 지냈고 또 이번 주엔 스승의 날도 다가옵니다. 홀로 잘 하고, 잘 살 것 같이 느껴지지만 실은 그 누군가와 머물렀기에, 그 안에서 많은 자양분을 받았기에 이처럼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이태원 본당 교우 여러분!


 한계와 나약함을 가진 인간이 전능하신 하느님께 머물고자 하는 마음은 전혀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그 안에서 당신의 생각을 읽으려 할 때, 우린 지금의 나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진정 원하던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성령께서 알려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성령께서 찾아오실 마음의 방 한 칸쯤 마련해 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분께서는 기꺼이 찾아오셔서 충만한 상태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오늘 복음 읽기 전 노래한 알렐루야로 강론을 마칠까 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내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나도 그 안에 머물러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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