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3주일

2009. 4. 26. 오전 7: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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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3주일 미사. 이민의 날. 사도3,13-19;요한1서2,1-5ㄱ;루카24,35-48

 찬미 예수님. 일주일 동안 교우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우린 현실을 살지만 한편으로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학교를 다니는 이유도 더 나은 상급 학교로 가기 위함이고요, 직장을 다니면서도 더 나은 곳을 찾거나 지금 있는 위치에서 더 나은 직급을 향해 나아가려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잘 보이지 않는 미래의 모습이, 마치 뿌연 안개에 가려 있는 듯이 보이기 때문에, 쉽게 주저앉고 그저 현실을 자족하는 경향으로 갈 때도 많아 보입니다. 이런 것은 우리 신앙생활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데요.

 오늘 복음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잃고 그야말로 공황상태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런 제자들의 마음을 감싸주시며 손, 발을 보여주시고 구운 생선도 드시면서 ‘내가 예전의 나다. 살아있는 너의 스승’ 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주십니다. 그러면서 예전 기록된 예언들이 이루어졌음을 성경을 통해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제자들에게 그런 기억을 갖게 만들어주시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이제 내가 살아온 것처럼 너희도 이렇게 살면 된다.' 하면서 우리에게 롤-모델(role model)을 보여주신 것 아니겠습니까? 그저 멀리 안 보이는 하느님만 믿고 있었다면 우린 금방 지쳤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 구원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낙담하면서 다가올 미래를 부정하였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은 우리의 약함을 미리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마음만 먹을 뿐, 행동으로 옮기기 어려운 사람들인지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이셨기에 오늘 요한 1서에도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나는 그분을 안다. 하면서 그분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거짓말쟁이고 그에게는 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그분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 안에서는 참으로 하느님의 사랑이 완성됩니다.” 우린 그분에 대해 안다고 여기며 오늘도 미사에 나왔습니다. 하지만 얼마나 아신다고 생각합니까? 결국 그분의 의도를 알 수 있으려면 행동에 옮겨야만 알 수 있는데요. 그 행동을 통해 참다운 복음의 실현이 어떤 것인지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신앙은 갇혀있는 신앙이 아닙니다. 그저 머리로만 ‘그래야 하는 것이지’ 라는 것으로 멈춰 서버리는 신앙이 아닙니다. 그 신앙은 내 주변으로 눈길을 돌리고 같이 가 줄 때, 생겨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부활 3주일이면서 이민의 날이기도 합니다. 우리 천주교회에서는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이민의 날을 지내고 있는데요. 우리 동네에는 다른 동네에서 볼 수 없는 여러 민족들을 동시에 만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외국음식점도 많아서 매일 먹는 김치찌개가 싫증나면 나가서 그들의 삶을 대신 맛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외국인들중에  몇몇은 외국인 성당에서 미사참례하지 않고 일부러 이태원 성당에 오는 이유를 혹시 아십니까? 가까우니까.. 그럴 수도 있지만 그곳에서 어울리지 못하고 왕따를 당한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으셨습니까?

 요즘 서울에 있는 신학교에는 외국인 신학생이 많이 와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중국, 방글라데시, 베트남 등.. 서울 신학교가 아시아에서 수준이 제일 높아졌고 그 정도로 많은 인원을 제대로 공부시킬 여력이 있는 나라가 별로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몇 년 전. 지금은 신부가 된 중국인 신학생 두 명이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린 붙잡고 이렇게 얘기했지요. “같은 민족끼리 싸우면 되겠니?” 그러자 이런 답변이 날아왔습니다. “너희는 같은 민족끼리라도 다 친하니?” 갑자기 할 말이 없었습니다.

 우리 주변에 외국인이 많이 산다는 것. 그것은 다시 말해 우리 곁에는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 많다는 이유도 됩니다. 그런 사랑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음을 의미합니다. 로마서 5장 20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죄가 많은 곳에 은총도 풍성하게 내렸습니다.” 

 서로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사는 것에 자신 없고, 믿음도 깊지 못하고, 사랑해줄 마음의 여유도 없구요. 하지만 우린 눈을 들어 멀리 내다볼 수 있습니다. 그 미래는 분명 예수님 자신을 제물로 바친 마음처럼, 그런 사랑을 실천해야하는데요. 우리도 주님이 뜻하셨던 그런 세상을 만들어 가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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