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2주간 수요일

2009. 4. 22. 오전 11:4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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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 2 주간 수요일. 사도 5,17-26;요한 3,16-21

 여러분은 신앙을 갖고 있으면서도 불안감을 가지고 계시진 않습니까? 죄를 지을까봐, 주님 마음에 들지 않을까봐, 오히려 편안하기 위해서 이곳에 왔는데 그 반대의 생각만 가득차서 모든 것의 평화를 누리려 하기보다 오히려 부담감만 있는 나의 상태를 보면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이런 마음 때문에 자꾸 다른 곳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은 아닌 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생각이 든다면 우린 과연 하느님은 왜 우리를 위해 오셨을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그 답을 잘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과연 예전에는 심판이라는 차원, 죄, 벌에 관한 교리를 중시하였습니다. 그래서 뜨거운 심판의 불을 통해 자신의 죄가 정화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맞는 말이고 유효합니다만 그러다보니 진정 당신이 오신 이유는 바로 사랑 때문에 오신 것임을 잊게 되었습니다. 이 사랑을 제대로 이해 못했기에 마치 사회의 회사처럼 자꾸 교회의 단체를 키우려고만 하고 실적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곤 합니다.

 1독서에서 주님의 천사가 감옥에서 풀어준 사도들을 수석사제들이 다시 심문하려 데려갈 때 폭력을 쓰지 않고 데려간 이유도 자신들의 최고의회가 욕을 먹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진정한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곳이라면 사도들을 제대로 바라보려 했을 것입니다만 그저 이렇게 자신의 집단을 유지하고자 근근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크기로 오지만은 않습니다. 그분의 사랑이 내 방식대로, 내가 기대하는 방향으로 오지만은 않습니다. 만약 심판이 필요하다면 나의 생각은 정화되어야 하겠구요. 대신 그분의 참 의도를 알 때 진정한 진리의 빛을 알 수 있을 것인데요. 그분은 우리가 행복해지길 바라십니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바른 것을 찾기를 바라십니다. 바라시는데로 행하십시오. 우린 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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