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수난 성지 주일. 나해
열 두 제자는 예수님께 불만이 많았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뜻을 이해할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예수님을 따른 이유는 예수님을 통해 나의 무언가가 이뤄지길 바랬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의 조그마한 소망을 말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가신 수난의 길, 십자가의 길은 자신들의 가져온 염원을 무참히 밟으신 것이라 보았습니다. 그랬기에 유다는 배반을 하였고, 베드로는 예수님과 같은 고통을 겪지 않으려고 3번이나 “나는 당신들이 말하는 그런 사람을 알지 못하오.” 라 말합니다. 성지가지를 흔들며 당신을 환호하던 손길은 어느 새 폭도들의 무리로 변하면서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의 그런 마음을 모르셨던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하느님과의 기도의 시간를 가지시면서 더 참된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개인적인 욕심으로 가득찼던 제자들의 요구를 물리치십니다.
이러한 2000년 전의 사건은 사실 오늘날에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내 말을 들어주지 동료나 가족들에게 행패를 부리며, 나의 의견을 강요합니다. 그런 강요를 통해 상대를 압박해 갑니다. 그러다가 결국 상대방이 내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미워합니다. 증오합니다. 사실 그 사람이 내 말을 꼭 들어줘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건 그저 나의 바램이지요. 상대방이 내 부탁을 들었어도, 그 다음은 그 사람의 판단의 몫으로 돌려야 하는데도, 우리는 상대방의 판단마저도 내 것으로 만드려고 합니다. 마치 창살 없는 감옥에다가 그 사람에게 가두는 꼴인데요.
제자들의 염원을 들어주지 못하는 인간적인 안타까운 마음, 분명 예수님도 아실 것입니다. 게다가 하느님이 말씀하신 십자가의 길을 걸어야 하는 당신 자신의 고통도 보였을 것입니다. 내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 그 사람들, 너무 미워하지 마십시오. 분명 내가 생각하지 못한 그 무언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식으로 미워하고 증오한다면 또 한 명의 예수님을 또 죽이고 마는 셈입니다. 루가복음 23장의 말씀을 끝으로 강론을 마칠까 합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 지 모릅니다." 과연 우린 무엇을 모르고 있는 것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