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4주일

2009. 3. 22. 오후 10:4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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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4 주일.

 찬미 예수님. 일주일 동안 교우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예전 10대의 어린 나이에 전 이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다른 날은 다 괜찮은데 사순만 다가오면 십자가, 고통, 단식과 금육. 이런 말들이 너무 어렵게만 느껴졌습니다. 부담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그런 고통 없이 구원을 이뤄주시면 안되나? 하는 생각 말입니다. 좀 쉽게, 어려움 없이 말입니다. 하지만 날이 지나면서 깨달았습니다. 참다운 구원에는 진정한 구원의 대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요.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이미 이사야서를 비롯한 예언서에 기록된 사실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이사야서 53장의 주님의 종 넷째노래에 보면 이런 부분이 나옵니다.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받은 자, 하느님께 매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하느님의 계획은 그야말로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성경을 조금만 읽으면 알 수 있었는데,,, ‘그저 나의 기분에 부담스럽게만 보았구나, 내가 너무 가볍게만 생각하고 있었구나.’ 라면서 내가 느끼는 기분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은 다릅니다. 12제자는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지만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라는 세 번의 수난 예고설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베드로는 당장 “안됩니다.” 라고 외쳤구요.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십자가 없는 구원, 고통 없는 행복, 대가 없는 소원이 이뤄지길 바라지 않습니까?

  오늘 복음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라고요. 이제 주님은 새롭게 들어 올려지려 합니다. 그것은 남들이 볼 때는 창피함이요, 수치이지만 우리에게는 감사요, 구원의 매달림입니다. 십자가로 끝남이 아니라 십자가를 통하여 구원으로 이어집니다.

 혹시 낙엽을 모아서 쌀 자루에 담아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자루를 흔드는 것은 많이 담기 위해서입니다. 자루를 발로 콱 밟는 것은 더 많이 담기 위해서입니다. 자루가 땅에 닿으면 흔들지 못할 겁니다. 날 흔드는 시험, 나를 밟아대는 고통을 당하는 우리들, 우린 주님께서 고통을 받으셨듯이 선택된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 흔들지 못할 만큼 많이 담는 자루가 되야 하는데요. 두려우시다고요? 현실의 이 고통, 당신도 이미 겪으셨습니다. 3번의 유혹을 통해 유혹이라는 것이 얼마나 달콤한 지 당신도 이미 아십니다. 내가 겪은 모든 것을 이미 겪어보신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린 안심할 수 있습니다. 2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라고요. 주님이 주신 그 선물 잘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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