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2주간 금요일

2009. 3. 13. 오후 4: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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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2 주간 금요일. 창세기 37,3-28; 마태오 21,33-46

사람마다 이런 모습 때문에 참 힘들어 합니다. 즉 되고 싶은 나와, 현재의 나 사이의 모습이 부딪히기 때문입니다. 나의 이 자리, 나의 이 모습을 만족하고 사는 사람도 있지만 항상 불만인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드디어 되고 싶었던 나의 모습을 만나게 되었다면 완전한 행복에 빠질 수 있을까요?

오늘 독서에서 이스라엘의 막내아들, 요셉은 한 가지 재능이 있었습니다. 꿈을 꾸어서 미래를 볼 줄 알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미래는 막내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형들을 이끄는 형상이었기에 아무래도 형들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아직 어린 요셉은 이것을 거리낌 없이 말해 버렸기 때문에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아 팔려가게 됩니다. 복음에서 포도밭 주인은 자신의 밭을 소작농에게 맡겨두고 멀리 길을 떠납니다. 소작농과 땅 주인과의 관계는 예전이나 오늘날이나 좋지 않습니다. 마치 집주인과 세 들어 사는 경우처럼 언제나 쫓기는 인상을 갖게 마련이고 나도 언젠가 이런 상태를 벗어나리라.’ 라는 마음을 품게 마련입니다. 물론 이 같은 모습은 바람직하긴 하지만 한편으로 자신을 왜곡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즉 지금 자신의 모습을 부정하게 본다는 것입니다. 고린토 11229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모두가 다 사도들일 수야 없지 않겠습니까? 모두가 다 예언자들일 수야 없지 않겠습니까?” 라고요. 자신의 현재 모습보다, 되고 싶은 모습에 더 치중하고 자신을 부정하다보면 원래의 나의 모습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소작농들이 포도밭의 주인아들까지 죽여 버렸던 것은, 지금 자신이 처한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린 가끔 하느님의 영역에 침범하고 하느님처럼 다른 이들을 심판하고 힘들게 만듭니다. 과연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까? 지금의 나, 내가 해야 할, 맡은 바를 찾아 꾸준히 해 나가는 나를 볼 때,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원래 구원을 받아야 할 유대인들은 진정한 자신을 보지 못했기에 오늘도 구세주를 기다리며 찾고만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살아선 안될 것입니다. 당신의 영역을 내어드리고 내가 해야 할 부분을 찾을 때, 나는 당신을 제대로 모시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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