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7 주일 미사. 이사야서 43,18~;고린토 2서 1,18-22; 마르코 2,1-12
찬미 예수님 일주일동안 교우 여러분! 청년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여러분께 무엇 하나 물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시기에 하느님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하느님의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혹자는 ‘두개가 같은 것이 아닌가?’ 여길 수도 있으실 겁니다. 하지만 우린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간혹 하느님보다 일 자체에 더 열중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입니다. 기도나 묵상보다는 단체활동에 더 참여하는 것 말입니다. 레지오는 나오지만 집에서 기도는 안하는 것 말입니다. 우린 하느님을 선택했지, 그분의 일을 선택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린 아직도 헤매고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도 활동을 안 하신 것은 아닙니다. 오늘처럼 중풍병자를 고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밀려드는 사람에다, 시간은 별로 없던 바쁜 시간에 당신께서 기꺼이 병자들을 고쳐주셨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우린 여기서 예수님의 마음 씀씀이의 약점을 보려 합니다. 그 약점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그분의 참 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약점은 예수님은 기억력이 좋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고난 중에 오른쪽 강도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주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만약 내가 예수님이라면 이렇게 대답했을 겁니다. “절대 잊지 않겠소. 하지만 당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 20년간 연옥에서 고생을 해야 합니다.” 라고요. 하지만 당신은 이렇게 말씀하시죠. “너는 오늘 나와 낙원에 들어갈 것이다.” 라고요. 잃었던 아들의 비유에서 둘째 아들이 집을 나갔다가 천신만고 끝에 돌아옵니다. 우리라면 이렇게 했을 것입니다. “아버지 집 나간 저 자식을 어디부터 때려 팰까요?” 그런데 당신은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워주어라” 말씀합니다. 당신은 우리와 달리 기억력이 좋지 않으십니다. 모든 이를 용서하시면서 용서하셨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십니다. 둘째 약점은 예수님은 수에 약하시다는 점입니다. 양의 비유에서 이럽니다. 양 백 마리를 키우고 있었지만 한 마리를 잃었을 때 지체않고 아흔 아홉 마리를 놔두고 그 양을 찾아 나섭니다.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많은 시간, 경비를 생각지 않으십니다. 계산하지 않으시는 그 사랑 말입니다. 셋째 약점으로 예수님은 논리학을 모르십니다. 은전 열닢 가진 여인이 한 닢을 잃었습니다. 그러다 은전을 찾자 이렇게 외칩니다.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그러면서 친구들을 불러 잔치를 벌입니다. 이런 낭비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프랑스 철학자 파스칼은 “팡세”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마음은 이성이 모르는 여러 가지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라고요. 당신은 이처럼 이상한 논리를 갖고 계십니다. 넷째 약점은 믿는 구석이 뭐가 있는 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산상설교에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도저히 이해가 안 갑니다. 그런데 이 설교로 말미암아 수많은 성인들이 그분의 삶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오늘 1독서에서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예전의 일을 기억하지 말고 옛날 일들을 생각하지 마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한다.” 라고요. 당신의 새 일이 무엇입니까? 바로 사랑이 넘치는 일 아니겠습니까? 중풍병자는 믿음이 별로 없어 보여도 그를 들것에 싣고 지붕에서 매달아 내린 그들의 믿음을 귀하게 보시고 치유의 기적을 베푸십니다. 왜 당신은 앞에서 열거한 약점을 지니면서도 그렇게 고치지 않고 그렇게 사실까요? 바보같이 말입니다. 참사랑은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상조 광고 CF 에 출연하는 탈렌트 이순재 씨의 말처럼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사랑 때문에 움직이십니다. 그러기에 그런 바보짓이 인간적인 계산법을 무너뜨리곤 합니다.
앞서 저는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해야지, 하느님의 일을 사랑하면 안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에 따라 움직이십니까? 아마 내일부터 있을 수 많은 일들을 쳐다보며 활동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우린 다릅니다. 경제적인 논리에 맞지 않아 보여도 우린 움직입니다. 며칠 전 추기경님을 조문하기 위해 온갖 추위를 무릅쓰고 몇 시간을 기다리고 3km의 행렬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랑 때문에 움직이는 사람들입니다. ==잠시 묵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