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4주간 화요일

2009. 2. 3. 오후 4:4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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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4 주간 화요일. 히브 12,1-4; 마르 5,21-43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라고 누군가에게 물어본다면 상대방이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라고 말해주길 바라십니까? 아니면 그저 ‘착한 사람입니다.’ 라고 말해주길 바라십니까? 아마 그 대답에 따라 여러분의 행동패턴은 달라질 텐데요. 세상에 착한 사람은 참 많습니다. 유순한 사람, 남의 부탁 거절 못하고 잘 들어주는 사람, 법이나 질서 잘 지키고 세상에 큰 소리 안내고 조용히 사는 사람 등 말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있는 사람은 조금 다릅니다. 조용하긴 하지만 활동적이고, 여러 가치 기준이 부딪힐 때 믿고 있던 신념에 맞게 행동합니다. 게다가 희생을 해야 참다운 것을 얻는다는 진리를 아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해 두며 그분의 뜻에 맞게 자신을 개방하는 사람입니다. 그럼 여러분은 어떤 쪽에 가깝다고 여기십니까?

 1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라고요. 그분이 어떻게 사셨습니까? 아마 내용 줄거리는 다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왜 나는 그분처럼 살지 못할까요? 다 알고 있는데, 이미 수십 년간 되풀이 되어온 복음을 듣고 있는데, 아직도 그분 과 나는 왜 차이가 있을까요? 독서 마지막의 말씀처럼 “여러분은 죄에 맞서 싸우면서 피 흘리며 죽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라는 구절처럼 죽음과 맞서는 상황이 오지 않아서일까요? 아니면 그분을 직접 뵙지 못해서일까요? 복음에는 두 상황의 이야기가 접합되어 있습니다. 하혈하는 여인이 주님의 옷에 손을 대어 나은 이야기와 회당장의 딸을 고쳐주는 이야기 말입니다. 그런데 회당장 집에 모여온 사람들의 태도는 심히 불신이 가득했습니다.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있다.” 는 말씀에 비웃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에 가까운 사람인 것 같습니까? 매달리다 구원받은 여인 쪽입니까? 아니면 경험을 중시하며 비웃는 쪽입니까? 아니면 그때그때 다릅니까? 우린 더 이상 착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믿음이 가득한 신앙인으로 탈바꿈 되어야 합니다. 그런 자세가 주님 보시기에 합당하고 당신의 뜻에 맞게 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우리는 예수님이 바라보신 방향과 같은 방향을 보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미 한 발자국을 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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