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 주간 목요일. 히브 3, 7-14
제가 제단에 서 있으면서 미사를 집전하다 보면 아이부터 어른까지 전 연령대의 얼굴들이 보입니다. 그런 여러분의 얼굴을 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하곤 하는데요. 어린이의 얼굴일수록 입가의 표정이 마치 알파벳 U자 같이 입의 끝꼬리가 귀에 걸려있는 형상이 많구요. 어른일수록 얼굴표정이 마치 굴비를 맨 정면에서 본 것처럼 입의 모양이 엎어진 U자일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화가 난 것도 별로 없는데, 사람이 커 갈수록 표정은 점차 굳어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게 하는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오늘 1독서에서는 ‘오늘 너희가 그분의 목소리를 듣거든 마음을 완고하게 가지지 말라’ 하십니다. 분명 우리는 평범한 삶을 살다가 갑자기 그분의 목소리를 듣게되면 기쁜 생활을 하게 마련입니다. 당연합니다. 얼마나 벅찬 감동이 밀물처럼 밀려오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네 보통의 모습은 어떤 방랑시인의 시구처럼 되갑니다. '올빼미여, 얼굴 좀 펴게나 이건 봄비가 아닌가' 란 시처럼 말입니다. 봄이 와도 기쁠 줄 모르는 것처럼 말이죠. 진정하게 사랑하는 자세가 되기 위해서는 내가 갖고 있는 굳음과 완고함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런 완고함은 화를 어떻게 내느냐 하는데서 부터 시작되는데요. 화는 내되 죄를 짓지 않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에페소 4장 26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화나는 일이 있더라도 죄를 짓지 마십시오. 해질 때까지 화를 풀지 않으면 안됩니다. 악마에게 발 붙일 기회를 주지 마십시오.’ 라고 되어 있습니다. 화라는 것도 내가 가지고 있는 자연스런 감정중의 하나입니다. 이를 지혜롭게 잘 다스리고 또 표출할 때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무조건 남에게 화를 낸다면 내가 가진 무기를 남에게 쏘는 형상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참고만 있다면 독극물을 내 안에 지니고 있는 모습이기에 나를 병들게 만들 것입니다. 평소 느낌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가가 나의 표정을 달라지게 만듭니다. 우리는 관상을 믿지 않지만 좋은 표정은 분명 남의 기분마저 달라지게 만들어줍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방향을 남에게 인식시켜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가게 해줍니다.
완고함이란 말은 곧 죽음과 같은 말입니다. 우리는 항상 부드러운 자세가 필요합니다. 부드러움은 강함마저 이기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진 강직함으로 당신이 들어오실 자리를 막고 있는 것은 아닌 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