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4주간 화요일

2008. 12. 23. 오후 3:2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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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4주간 화요일. 말라키 3,1-4.23-24;루카 1,57-66

  우리는 성경을 보면서 수 많은 인물들을 보게 됩니다. 모범이 될 만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보면서 혹시 나도 그런 사람이 아닌가?’ 살펴봅니다 성모님은 즈카리야와  비슷하게 구원에 관한 의문은 품었습니다만, 주님의 약속의 실현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구원의 방법에 대해 물음을 제기하였지요.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하면서요. 하지만 오늘 복음의 주인공인 즈카리야는 어떠하였습니까?

  사실 성모님은 아무런 직함도 없었던 사람인데 반해, 오늘 복음의 즈카리야는 그 당시 사제였습니다. 실로 하느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부족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말을 못하는 벌을 받지요. 자신에게 발현될 가능성에 신경 쓰다가 말입니다. 하지만 요한이 세상에 나옴을 목격하면서 그의 이름은 요한 이라고 서판에 쓰면서 주님의 기적을 받아들였고, 그러면서 다시 정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이런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첫째 하느님의 뜻이 우리를 암울하게 만들지는 않는구나.’ 라는 것입니다. 회복뿐만 아니라 더 큰 것을 얻게 하시니까요. 하지만 대다수가 그게 언제에요?’ 하면서 그저 오래 걸린다고 여기지요. 둘째는 우리의 알량한 지식을 가지고 나의 미래에 대해 섣부르게 판단을 내린다는 사실입니다. 천사의 목소리를 들었던 즈카리야도 그렇습니다. 자신의 많은 나이 때문에 이미 희망을 접고 있었습니다. 혹시 우리도 그렇게 갇혀 사는 것은 아닙니까? 내가 들어왔던 것, 내가 보았던 것, 남이 이야기한 것에 그저 막혀서, 더 이상의 것을 못 보는 사태에 직면한 것은 아닌지요.

  결국 즈카리야는 변합니다. 기적을 체험하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는 삶으로 말이지요. 우리도 각자의 삶에서 뭔가 작은 체험을 하였습니다. 아예 없지는 않았지요. 그저 당연하게 보였던 것도, 실은 당신의 섭리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렇다면 체험한 그 사실을 어떤 식으로 찬미와 감사를 드렸습니까? 이제 당신께 고마움을 말씀드려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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