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2주 생명수호주일

2008. 12. 5. 오후 10:4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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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2주간 생명미사 강론

 서울대교구는 매년 12월 첫째 주일을 ‘생명수호주일’로 제정하여 “인간 생명의 불가침성을 재천명하면서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하고 사랑하며 이를 위해 봉사하는 인간생명의 새로운 문화를 건설하라고 촉구하는 시대의 요청에 응답하고자 합니다. 인간 구원의 빛으로 오실 기쁜 소식을 기다리는 대림 시기에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의 신비를 묵상하게 됩니다. 메시아의 탄생으로 우리 각자의 생명은 충만하고 영원한 생명에로 참여하도록 불리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세상을 너무도 사랑하셔서 인간이 되어오셨다는 것은 하느님이 무한한 사랑이 있음을 보여주는 처사요, 모든 사람이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러나 오늘날 세상은 난치병 치료의 목적으로 거룩한 인간생명이 짓밟혀지고 있으며 1960년대 이후 이어져 온 산아제한정책으로 세계 최고의 저출산 국가가 되었고, 가톨릭 신자 중에도 사회 경제적인 이유로 출산을 미루거나 거부하는 부부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저출산 현상은 끝내 우리 사회의 존립기반을 흔들 수 있으며 하느님을 닮은 또 다른 생명을 전달하고 보살피도록 하신 주님의 거룩한 소명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또 혼인의 서약을 깨뜨리는 이혼은 부부 사이에 큰 상처를 줄 뿐 아니라 자녀들에게까지도 씻을 수 없는 아픔을 주게 됩니다.

 근래에 우리에게 생명에 관한 조명을 다시 해보는 계기가 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11월 28일 서울 서부 지방법원 민사 12부는 76세의 환자 김모씨와 관련된 소송에 대해 “회복 가능성이 없어 치료가 의학적으로 무의미하고 환자가 치료 중단을 원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면 환자의 자기 결정권에 의해 병원은 인공호흡기를 제거해 달라는 요구의 응할 의무가 있다.” 고 판결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건에 대해 조심스럽게 다가갈 필요가 있습니다. 재판부는 모든 유형의 치료중단에 관해 다룬 것이 아니라 단지 무의미한 생명연장 장치를 제거하는 문제만 인정한 것이라 강조한 것입니다. 여기서 머리가 복잡해지실 수도 있지만 이 판결에서 관련하여 파생되는 문제 중 가장 큰 문제는 용어가 혼용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먼저 문제에 다가가기 앞서 뇌사, 식물인간 상태, 안락사, 존엄사 이 4가지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뇌사는 대뇌, 소뇌, 뇌간 모두의 기능이 정지되어 소멸된 상태를 말합니다. 하지만 식물인간 상태는 다양한 존재가 가능하지만 공통적으로 뇌간은 살아있는 상태입니다. 뇌간은 인체에 생명을 주관하는 기능을 하기에 식물인간 상태라도 수분과 영양을 공급할 경우 일정기간 생명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 안락사와 존엄사인데 안락사는 질병에 의한 자연적 죽음 이전에 환자에게 죽음을 초래하는 물질을 인위적으로 투여해 죽음을 야기시키는 행동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할 것은 제일 관심사가 되고 있는 바로 존엄사에 관한 문제입니다. 교회에서 말하는 존엄사는 ‘인간 존엄성을 지닌 품위있는 인간의 죽음’ 을 이야기합니다. 이를 풀어 말하자면 ‘생명의 소생 가능성이 희박한 환자의 무의미한 연명 치료 중단 행위’ 로 정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에서는 이를 소극적 안락사와 무의미한 치료중단과 뜻을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고 안락사를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서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주장하고 있어서 우리는 존엄사라는 말 대신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이라고 사용하는 것이 옳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번 판결에서 바라볼 것은 모든 식물인간상태의 환자들의 치료를 중지할 수 있다고 확대해석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식물인간환자들은 호흡 중추가 있는 뇌간이 살아있어 인공호흡기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이번 사건의 환자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인공호흡기가 필요했고 소생 가능성 없이 환자에게 고통만을 안겨주었다는 사실입니다. 가톨릭교회는 안락사를 반대하지만 무의미한 연명치료중지를 안락사로 보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무의미한 연명치료’ 만을 제공하는 환자의 인공호흡기 사용은 소생 가능성도 없이 인위적으로 환자의 고통만을 연장시키는 것이기에  의료집착이라 볼 수 있으며 이 경우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자연스런 죽음의 과정을 맞이하도록 돕는 행위가 됩니다. 하지만 연명 치료중지 결정은 신중해야 하는데요. 치료중단이 필요한 경우 모든 판단의 주체는 가족도 아니라 환자 본인이어야 합니다. 이번 경우의 문제점은 자신이 의사 표현을 미처 다 하지 못하는 의식 불명상태였기에 의사는 ‘추정동의’를 취했던 겁니다. 이 추정동의를 하려면 이제는 가족들의 증언만을 들어볼 수 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가족들은 평소 환자가 ‘내가 소생하기 힘들 때 인공호흡기를 끼우지 말라.’ 라는 말을 근거로 내세웠지만 이 추정동의가 무리가 있었다는 의견이 나올 수 있고, 이 판결로 말미암아 수많은 말기환자 가족들이 경제적인 부분과 결부하여 악용할 여지도 충분이 생길 수 있습니다. 아직 올바른 용어도 확립되어 있지 않은 마당에 법제화 추진의 행위는 너무 앞서간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교황님은 생명의 문화를 건설하기 위해 올바른 가치 기준을 회복해야 한다고 촉구하십니다. 소유를 주장하기보다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사느냐가 더 귀중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는 것이 나에게 해주는 것이다.’ 하신 말씀을 기억하며 가장 작고 여린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돌보는 삶을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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