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왕 대축일

2008. 11. 22. 오후 1:37:17

글자

그리스도 왕 대축일.(성서주간). 에제 34,11-12.15-17;고린115,20-28;마태오 25,31-46

찬미 예수님. 일주일동안 교우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요사이 분위기는 모든 것이 얼어붙는 듯한 모습입니다. 각종 세금과 전세난과 경제의 어려움 등의 소식을 들으며, 희망적인 소식을 기다려보지만 우리가 예상하는 그런 소식은 잘 들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절망적인 것 같은 이 때에도 우린 이 자리에 모여왔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말씀을 귀여겨듣습니다. 과연 무엇 때문일까요?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이 자리에 모여들게 만드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많은 이유 중에서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주님이요, 왕이라는 사실 때문일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알고 있는 임금, 왕은 높은 자리에서 군림하고 명령만 내리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군주제도의 허점을 알고 난 사람들은 다른 제도를 꾀하기에 이릅니다. 계몽운동을 비롯하여 지금의 자본민주주의 대표격인, 대통령 중심제까지 이릅니다만 뭔가 부족해보입니다. 우리가 목놓아 원하는 나라에는 조금씩 아쉬움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때에 당신은 이런 말씀으로 우리에게 약속해 오셨습니다. 나 이제 내 양떼를 찾아서 보살펴 주겠다.” 라고요. 구약의 이 예언이 실현될 날만을 기다려 왔고, 이 약속만 부여잡고 죽어간 사람의 숫자도 4천년의 시간만큼이나 길고 고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인해 기다림의 갈증은 풀렸습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해 보입니다. 당신이 오시면 예언처럼 모든 걱정이 끝날 줄 알았는데, 막상 오신 당신의 행색은 초라하기 이를 때 없습니다. 그리고 나의 걱정은 계속 유지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과연 당신이 우리가 기다려 온 진정한 구원자이신가?’ 의문이 증폭됩니다. 게다가 오늘 당신은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었다.” 하시니 말입니다. 여기에 우린 되묻습니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하니 당신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왕, 임금이란 다른 마음을 품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을 자기 몸처럼 여기는 자세에서 출발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저 시스템을 중시여기고 법을 위해 법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 진정한 사람을 우선시 하고, 힘든 걱정을 같이 나눠주는 속에서 진정함을 얻을 수 있음을 말입니다.

  작년 2013년 12, 기독교 윤리 실천운동에서는 만 20세 이상의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국 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를 했답니다. 그 중 비그리스도 신자가 바라볼 때 가장 신뢰하는 교회는 가톨릭 교회가 47%가 가장 믿을만하다고 하였고 불교는 38%. 그리고 개신교회는 12.5%만이 신뢰한다고 조사되었답니다. 우리의 퍼센트 수치가 높다고 좋아할 일이 아닙니다. 교리가 다르고 믿는 신이 다르다 하더라도 우리가 믿는 종교의 가르침이 남을 사랑하라는 말을 들어놓고도 정작 남을 미워하기에 충분한 행위를 하고 있다면, 분명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나는 어떤 사고방식으로 살고 있습니까? 대부분 사람들은 네가 먼저 무엇을 주면 그제야 내가 줄 수 있다.’ 라는 사고방식으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언가 주면서 돌려받기를 원하는 사랑은 그냥 자기 사랑인-self love-의 한 형태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를 두고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런 표현을 썼습니다. ‘the enemy of God; 하느님의 적이라고요. 돌려받기를 원하겠지만, 돌려받기를 주장하지 않는 사랑은 자기를 향한 사랑을 죽이고, 고결한 정화를 통해 이루어 나가는 사랑이 되어갈 수 있습니다.

오늘 2독서에서 이런 말씀이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실 것입니다.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 진정 어려운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다지 어렵지만도 않습니다. ‘상대방이 원하는 그것을 해줄 때 이미 시작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린 주저하는 시간이 너무 깁니다. 그러다가 지나치고 맙니다. 그리고 나중에 후회하지요. 이번 주는 성서 주간이기도 합니다. 항상 말씀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이지만 당신이 어떻게 행하셨나를 찾아보면서 실천할 때, 우린 진정한 왕다운 자세가 어떤 것인지 알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진정 풍요로운 마음으로 한 주간이 이어지길 두 손 모아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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