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2주간 수요일.
옛날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어떤 스승님이 도지사에게 묵상을 하러 오라고 청했습니다. 그런데 그 도지사는 자신의 삶이 너무 바쁘다고 갈 수 없을 것 같다고 여겼습니다. 그러자 스승님이 이런 답변을 보냈습니다. “당신은 눈가리개를 하고서 너무 바빠서 그것을 벗지 못하고 밀림 속을 걸어가는 사람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러자 도지사는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정말 바쁩니다. 하는 일이 많아서 시간이 모자란단 말입니다.” 그러자 스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묵상을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진짜 원인은 마음의 동요입니다.” 라고요...
지금 마음이 불안하지만 더 마음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주님이 아니라 혹시 다른 것은 아니십니까? 오늘 당신은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하셨지만 그럼에도 우린 짐을 지고 있으면서 당신에게 맡기질 못합니다. 그것이 무거운 줄 알면서도 낑낑대고만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이길래 계속 비슷한 상황이 되풀이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마음이 어디에 지금 있는 지 모르는 나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1독서의 모습처럼 ‘그분께서는 피곤한 이에게 힘을 주시고 기운이 없는 이에게 기력을 북돋아 주신다.’ 하셨지만 우리 입에서는 오히려 이런 소리가 나옵니다. “그건 알지요. 아는데요..” 하면서 말을 흐리는 것은 진정 끝까지 한번 당신께 맡겨보고 결정하겠다고 여기기보다는 어느 정도 해보고 안되면 이리로 저리로 뛰어다니는 마치 메뚜기의 모습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어쩌면 불안한 마음은 다 비슷하리라 여겨집니다. 내가 해야할 일이 더 커보이는 것은 다 마찬가지라 여겨집니다. 이런 때에 우리가 할 일은 당신이 해주시는 일이 내가 생각하는 범위 내에서만 움직이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저 내가 바라는 수준에서만 활동하지 않는 사실, 그러니까 그 이상도 더 해주실 수 있는 분임을 안다면 우리의 청원, 바램은 마음의 갈림없이 충실히 나가는 것이 내가 해야할 일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