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2주간 목요일. 예레미아 17,5-10; 루카 16,19-31
예전 교리를 배웠을 때를 잠시 돌이켜보겠습니다. 이때 우리는 죄인 것과 죄 아닌 것. 즉 선한 것과 악한 것에 대해 구분하고 하느님이 주신 양심에 비추어 살아야 하기에 양심성찰을 잘하고 고해성사를 잘 하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만 배우다보니 조금 미약하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저 이분법적으로 선한 것과 악한 것만을 구분하는 것이, 나의 신앙생활에 어떤 도움이 되는가 하고 말입니다. 그게 나중에 어떤 파급효과를 몰고 올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 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그의 마음이 주님에게서 떠나있다. 그러나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 “이 말씀이 의미하는 것을 써보시오.” 라는 시험문제를 냈을 때 여러분은 무어라 답안지에 쓰시겠습니까? ‘그저 하느님 말씀 잘 들어야 한다는 것 아냐?’ 라는 답안만 쓰신다면 여러분은 50점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어디에 관심을 기울이고 마음을 쏟느냐에 따라서 나의 미래의 모습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온 부자도 그의 상태에서는 별 문제없이 지낸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상에는 라자로가 도와달라고 애걸한 적도 없기에 도움을 거절한 야박한 사람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는 나중에 지옥에 가게 됩니다.
우리는 여기서 들여다 볼 것이 있습니다. 단순히 죄를 짓고 안 짓고를 떠나서 내가 어디에 힘을 기울이고 관심을 쏟느냐에 따라 나의 상태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변화되려고 세례를 받고 기도를 합니다. 그 변화란 당신처럼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린 죄를 통해 상처를 입습니다. 고해성사를 통해 치유되지만 계속 같은 죄를 짓다보면 그 상처는 나를 곪게 만들고 끝내는 다리를 자르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여기서 다리를 자른다는 표현은, 다시 말해 나를 당신과 멀어지게 만드는 영적인 불구가 된다는 말입니다. 한번 죄를 짓고 멀어질 때 발생되는 파급효과를 우린 너무 간과하고 있습니다. 고해성사를 통해 죄 사함은 받지만, 벌은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연옥에 가서 갚아야 하는데요. 부자도 겉으론 별 문제없이 지낸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나중에 올 후폭풍에 대해선 간과하였던 것입니다. 한번 쉽게 짓는 죄를 너무 가벼이 여기지 마십시오. 그것이 당신과 나의 마음을 멀어지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