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 2주간 금요일. 사도행전 5,34-42; 요한 6,1-15
여러분처럼 매일 성당에 찾아와 기도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제는 너무나 당연하게 예수님을 부르며 기도합니다만, 2천년 전에는 이것이 당연한 현상이 아니었습니다. 원래 있던 유다교가 보기에는 기존 질서를 위협하는 불법단체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던 건데요. 여기에 오늘 율법교사인 가말리엘은 참으로 현명한 제안을 합니다. “저 사람들 일에 관여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저들의 그 계획이나 활동이 사람에게 나왔으면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에게서 나왔으면 여러분이 저들을 없애지 못할 것입니다. 자칫하면 여러분이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세계를 호령했다던 로마왕국도 기원 전 753년에 창건하여 1139년 동안 지속되습니다만, 그것도 나라가 동서로 갈라져서, 지금의 천주교회처럼 2천년이 넘는 시간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가말리엘의 말대로 하느님의 힘이 없다면 지속될 수 없었던 그 시간이 우리는 체험하고 있는데요. 그는 무시했겠지만 말이지요.
우린 어떻습니까? 이 모든 일을 너무 당연하게 보는 건 아닐런지요. 기적을 보았던 많은 이들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그분이 만일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 아니라면 이런 일은 도저히 하실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린 그분의 힘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오늘 복음처럼 “여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정도로 당신을 축소시켜 보는 것은 아닐런지요.
우리 믿음의 정도는 어느 정도라 여기십니까?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하느님의 힘과 권능은 또 어느 정도라 여기십니까? 중세 스콜라 철학자인 성 안셀무스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하느님이란 존재는 ‘그 보다 더 큰 것을 생각할 수 없는 것’ 이라 말하면서 ‘그 안에는 시작도 끝도, 여러 부분들의 결합도 없는 것, 항상 전체로서 밖에 생각될 수 없는 것, 존재와 사고의 전체이다.’ 라고요. 그는 하느님을 이렇게 표현합니다만, 우린 그분을 무어라 표현하고 있습니까? 너무 내 수준에서만 당신을 보진 말아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