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11 주간 화요일.
신앙인과 비신앙인의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말 그대로만 따진다면 믿는 이와 안 믿는 이. 이렇게 구분할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 삶을 살아가는 신앙인이 다른 이들과 구분될 수 있는 점은 바로 자신의 증여라는 차원에 다가가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헌신하고 내어주고 그러면서 갖고 있던 자신의 한계를 더 큰 차원으로 틀을 키우는 사람을 말하는 것인데요. 이소연 씨의 ‘소금꽃 이야기’ 라는 시에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여기 / 염전에 말없이 피는 꽃을 보거든 / 사랑에 대하여 말하지 말라 / 햇볕과 바람으로만 피는 꽃 /오래두어도 변하지 않는 침묵의 무게를 달아보라 /뙤약볕에 졸아드는 파도 알갱이 / 수차에 몸을 실어 찰싹찰싹 아픔을 달래더니 / 소금꽃, 씨앗처럼 여물었다 / 바닷물 부드러운 출렁임 속에 / 이렇게 뼈있는 말이 들어있을 줄이야 / 끝까지 바다이기를 고집하지 않고 / 때를 알아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 물의 환희를 보라
오늘 복음은 너무나 유명한 복음이지만 누구나 하기 힘들어 하는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라는 말씀입니다. 누구나 어느 정도의 한계를 긋고 그 안에서만 맴돌려고 합니다. 또 그런 삶이 편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걸로 끝입니다. 나의 새로운 면을 발견 못하고 그저 그런 나로 전락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방금 앞의 시처럼 바닷물이 그 자체로 머물려 하지 않고 자신을 내려놓을 때, 그것은 엄청난 변화를 일으켜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주는 존재로 바뀌게 됩니다. 아마 오늘 고린토 2서의 말씀에 “그들은 힘이 닿는 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기꺼이 내놓았습니다.” 라는 말씀을 보면서 여러분도 달라지고 싶다는 생각 들지 않으신지요.
주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만 결단은 우리의 선택입니다. 지금의 나에서 탈출하고 싶다면, 당신의 말씀대로 한번 해보십시오. 하지만 지금의 나의 모습에서 만족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선택은 여러분의 몫이니 말입니다. 요한복음 3장 3절의 말씀을 끝으로 강론을 마치겠습니다. “누구든지 새로 나지 아니하면 아무도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