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9 주간 목요일

2009. 6. 4. 오전 11:4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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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9 주간 목요일. 토빗 6,10-8,9;마르코 12,28-34

사람마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있습니다. 스타일이 있습니다. 원칙이 있습니다. 삶의 형식은 이제껏 자신을 만들어주고 지탱시켜준 고유한 형식이기 때문이기에 이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하거나 다시금 제대로 세우려 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여러분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이제껏 지켜오신 그 삶의 원칙이 몇 십년이 지나도 계속 유지할 만한 것입니까? 어떤 이는 자신만 보며 살아가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자신의 삶보다는 가족을 위해 바치기도 합니다. 또 다른 이는 사람보다 일에 충실한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 다르다면 당연히 어느 한 쪽에만 충실할 수 밖에 없는데요.

오늘 율법학자 한 사람이 다가와 예수님께 묻습니다. “모든 계명 가운데 첫째 가는 계명이 무엇입니까?” 라고요. 자신이 몰라서 묻는 것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율법조항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유다교의 계명은 613개 조항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248개 조항은 명령이고, 나머지 365개 조항은 금지하라는 조항입니다. 그렇기에 진정 중요한 것이 무얼까 혼돈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도 그렇잖습니까? 세상에 생겨난 것들이 다 중요하지만 어떤 것을 우선순위에 놓고 바라봐야 할 지 암담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당신은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둘째는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율법학자도 맞습니다. 라고 응하자 “너는 하느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는 칭찬을 듣습니다.

세상에는 참으로 반짝이는 것들이 많습니다. 보석을 포함해 자연물, 사람에 이르기까지 다 빛나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빛날 수 있는 것은 태양이 있기에 그렇게 아름다워 보이는 것입니다. 그동안 좋은 사상, 격언들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 모든 것이 대단케 여겨 보이는 것도 창조주가 우리를 내셨기에, 그분의 섭리 하에서 태동 되었기에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화답송 후렴구가 이러했습니다.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모든 사람”. 진정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얼까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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