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대축일. 사도 2,1-11;고린토1서 12,3-13; 요한 20,19-23
찬미 예수님. 일주일동안 교우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지난 한 주간을 되돌아보니 참 힘들었던 주간으로 기억이 됩니다. 한 분의 죽음으로 상실감에 사로잡혀 애통해 하는 많은 분들의 얼굴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떠나보내야 하는 안타까움이야 말로 다 할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남아 있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보게 본다면 그저 슬픔에만 잠겨 있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오늘 여러분은 성령강림대축일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성령, 이 말은 히브리 단어로 루아흐(ruah), 그리스 단어로 프네우마(pneuma) 라 일컫습니다. 즉 ‘숨이요 얼’ 이란 단어가 되겠습니다. 그런데 영어나 유럽의 현대 언어는 많은 부분을 라틴어나 그리스어에 뿌리를 두고 파생되어 있습니다. 방금 들으신 단어, 프네우마라는 단어는 이탈리아에서는 pneumatico라 불립니다. 이 단어는 형용사로 ‘성령의, 성령적’ 이란 단어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이탈리아에 가보니 그 곳의 자전거 수리점 간판에도 이 단어가 실려 있었다는 점입니다. ‘아니? 무엇 때문에 그럴까?’ 고민을 하다 사전을 뒤져보니 이 단어에 파생어로서 ‘무엇인가 바람으로 그 안을 채울 수 있는’ 이란 뜻도 포함되어 있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자전거 바람을 채운다는 것,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자전거나 자동차가 바람 빠진 타이어로 주행하다 보면 차 자체를 망가뜨리게 합니다만 알맞게 공기가 주입된 타이어는 얼마든지 속도를 내도 거뜬히 달려줄 수 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만 우린 차를 타면서도 이런 사실을 모르다가 가끔 바람 빠진 타이어를 경험할 때에야 바람의 중요함을 압니다. 성령의 역사하심도 마찬가지입니다. 쪼그라든 타이어에 바람을 넣어야 신나게 달릴 수 있는 것처럼 성령은 좌절되어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영적 에너지를 충만히 부어 주시어 우리를 활력에 넘치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그래서 오늘 2독서에는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형제 여러분,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 메시아다’ 라는 사실은 교리책에서 아마 보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통해 읽어보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 입에서 나오는 고백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예수님이 진정 나를 이끌어 주실 분이다 하고 믿는 마음이 여러분 안에 얼마나 가득 차 있습니까? 오늘 복음에 보면 이런 표현이 실려 있습니다.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라고요. 예수님이 잡혀 죽었으니 이제 그 분의 끄나풀인 나도 잡혀 죽겠구나 하는 불안감이 가득했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이 등장하십니다. 이때 보통 사람 같으면 이렇게 이야기 했을 것입니다. ‘너희들! 날 버리고 도망갔지? 특히 베드로, 너는 날 모른다고 3번이나 배반했어? 이 나쁜 놈들아?’ 라고요. 그런데 당신은 그러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상처입은 곳을 보여주시며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하십니다. 이미 당신은 성령으로 인해 치유를 받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미워하는 마음도 고통 받은 괴로움도 성령으로 인해 말끔히 없어진 것입니다. 가끔 면담을 하시는 분들의 말씀 중에 이런 말씀들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나는 그 사람을 죽어도 용서못하겠어요’ 라고요. 그래요! 그 마음 이해합니다. 그런데 남을 미워할수록 내 마음의 상태는 점점 더 나빠지고 있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하고 싶으신지요?
사랑하는 이태원 본당 교우 여러분
신앙인들은 역경 속에 지쳐 헤메이다가도 나를 살리고자 충만한 곳에서 힘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 힘을 통해 살아갑니다. 마치 자전거 타이어에 바람을 넣듯이 우리의 맥빠진 삶에도 바람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성령의 강림이라 이야기 합니다. 오늘 성령강림대축일을 맞이하면서 내가 가진 힘만으론 안된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그분의 협력을 바래야 할 것입니다.
성령강림대축일. 학생..미사..
봉달 : 아이~ 조금만 더 했으면 이길 수 있었는데 아이~ 열받아.
할머니: 봉달아~ 뭐 때문에 또 이리 심통이 났어?~ 오늘도 신부님 강론이
재미 없든? 요즘 보좌 신부님 센스가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아...
걱정이야... 보약을 사다 드려야 하나? 예전 같지 않아...쯧쯧...
봉달: 아니 그게 아니고... 오늘 서충완 선생님이랑 자전거 타고 누가 빨리 성당 오나? 경주 하다가 졌단 말이에요.. 아이~
할머니: 네가 왜 졌는데? 서충완 선생님보다 봉달이 네가 더 힘이 좋잖아?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오늘도 삶은 달걀 5개나 먹고 성당 갔 잖아?
봉달 : 그게 부활 달걀이란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어떻든... 내가 진 이유는 요? 자전거에 바람이 충분히 안 넣어서 졌던 거예요...
바람만 더 넣었어도 이렇진 않았는데...
신부 : 오늘 봉달이가 큰 것을 깨달았네요?
봉달:그게 무슨 말이예요? 신부님... 제가 뭘요?
신부: 바람 말이예요... 그리스어로 숨, 얼, 바람을 프네우마라 하는데요? 다 시 말해.. 성령의, 성령적 이란 뜻이에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탈리 아 자전거 수리점에도 프네우마티코 라는 말이 쓰여 있다는 사실이에 요.
봉달: 성령하고 자전거 수리점 하고 무슨 관계가 있는데요? 이상한데요?
신부 : 이태리어 사전을 뒤져보면 ‘무엇인가 바람으로 그 안을 채울 수 있는’ 이란 뜻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수리점에도 그런 말을 썼는데요?
자전거 바퀴에 바람을 충분히 넣어야 속도를 낼 수 있듯이 우리들도 그런 바람이 필요해요...
봉달: 어떤 바람이요?
신부: 다시 말해 성령을 받아야 하는 거죠.. 오늘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두려 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는 제자들에게 찾아가시는 장면이 나와요.
할머니: 그런데 예수님은 참 비위도 좋으시다. 어떻게 배반하고 도망갔던 사람들에게 다시 다가갈 수 있지요? 참 대단해...
신부: 거기서 예수님은 말씀하세요..“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미 예수님은 성령으로 인해 기분이 풀리신 거예요. 그래서 미워하는 마음도, 고통도 없어진 거구요. 가끔 면담을 하다보면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이 나와요. ‘나는 그 사람을 죽어도 용서못하겠 어요’ 라고요. 그래요! 저도 그 마음 이해하겠는데요? 그런데 남을 미 워할수록 내 마음의 상태는 점점 더 나빠지고 있는 현상은 어떻게 설 명하고 싶지요?
봉달 : 맞아요. 우린 나만의 생각으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없어요. 그러기에 성당에 나오는 거구요. 우리 새로운 바람인 성령을 내 안에 채울 때 예수님처럼 마음이 넓어지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꺼예요. 그럼 다음에 봐요. 안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