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대축일.
찬미 예수님. 일주일동안 교우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오늘 미사 시작할 때도 그랬지만, 기도의 시작과 마침 때 하게 되는 것이 바로 성호를 긋는 행위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이라고 말하면서 머리에서부터 시작하여 가슴, 양 어깨에 손을 올리게 되는데요.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여러분은 무슨 생각이 떠오르시는지요. 그렇게 하라고 교육받았으니까 하십니까? 아니면 삼위를 부르며 오늘도 당신의 뜻대로 살기를 기원하십니까?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많은 분들이 강론을 하시면서 ‘이 날의 강론만큼은 참 어렵다. 믿는 교리이기에 믿을 수 밖에 없다.’ 는 신부님들의 말씀을 들어오셨을 것입니다. 물론 인간의 머리로 하느님의 신비에 대하여 설명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것도 표현의 수단이 참으로 제약적이고 오해의 소지가 많은 인간의 언어로 해설한다는 것은 신령스러운 신비에 대해 과연 몇 퍼센트나 옮길 수 있을까? 하는 의문부터 들기 때문입니다.
오늘 1독서의 모세는 백성들이 체험해 온 하느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너희는 오늘 주님께서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땅에서 하느님이시며 다른 하느님이 없음을 분명히 알고 너희 마음에 새겨 두어라.”는 말을 합니다. 그동안 내 삶을 주관하시고 나를 이끌어 주신 모습을 잊지 말라는 것인데요. 하지만 우린 참으로 잘도 잊어먹습니다. 게다가 오늘 복음에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는 말을 들었지만 무엇을 어떻게 실천하고 가르쳐야 할 지 암담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기 위해 교회 역사 중에서 교리의 정립과 교회의 발전에 이바지하면서, 신앙과 교회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교회의 아버지’라고 일컫는 교부들의 이야기를 찾아봐야 합니다. 2세기의 교부였던 리옹의 이레네우스 성인은 이런 말씀을 하였습니다. ‘모든 구원 역사는 성부로부터 유래되고 성자에 의해 실현되며 성령에 의해서 충만히 성취된다.’ 고 말하면서 이 중 성자와 성령을 하느님의 두 손이라는 유명한 표현을 남겼습니다. 이 후 여러분도 들어보신 인물인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삼위일체는 세 위격이신 한 분 하느님께 대한 신앙이라 고백합니다.’ 즉 세 위격은 실제적으로 구분되는데 이는 ‘관계’ 안에서 이뤄집니다. 성부께서는 낳으시는 분이고, 성자께서는 나시는 분이며 성령께서는 발하시는, 즉 드러나는 분으로 일컫습니다. 즉 구원경륜을 위한 삼위일체는 그 관계성이 참으로 중요 하다고 하겠는데요.
사회에서도 그렇잖습니까? 회사에서 신상품이 나오기 위해선 개발, 기획부서에서 모든 아이디어와 프로젝트가 유래되면, 실질적인 제조분야에서 짜여진 설계에 따라 물건이 나오게 되고, 영업소에서 제품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홍보와 함께 만족시켜주면 소비자는 기쁨에 찬 생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회사와 소비자의 관계는 그저 제품을 팔고 사는 차원을 너머 그 브랜드 네임을 통해 회사와 소비자는 한 가족이라는 관계성까지 형성될 수 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관계는 그야말로 유기적인 관계라고 칭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린 그런 삼위를 통해 우리의 삶이 하느님과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습니다. 성자이신 예수님과 성령의 활동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바라볼 수 있게 해줍니다. 이런 것이 신경을 통해 나타납니다. 평상시 우린 미사를 통해 사도신경만 외었지만 실은 381년에 제정된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이 신경의 원조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매우 분명한 삼위일체론적이 고백이 이루어져 있는데요. 사도신경에서는 그냥 넘어간 부분이 여기서 자세하게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 이제 모두 일어나시고요. 성당 의자 앞에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이 적힌 종이를 들어주십시오. 이제 이 신경을 통해 우리가 진정 외치고 고백해야 할 것을 스스로 외치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