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성체와 성혈 대축일

2009. 6. 13. 오후 8:53:25

글자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

  찬미 예수님. 일주일동안 교우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매일하는 행위는 사람들에게 매너리즘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매일 같은 집밥을 먹다보면 질리니까 가끔씩 외식을 하곤 하는데요. 그렇다면 신앙의 모습도 이런 상황에 처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매번 똑같아 보이는 전례 행위에 싫증을 느껴, 주일미사를 빠지거나 다른 곳에 놀러가는 것이 더 흥미있어 보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식사는 다른 것으로 대용해도 배부르면 그만이지만,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시는 것은, 그 어디에서도 대신할 수 있는 곳이 없고, 그날 미사는 일생에 단 한 번 뿐이었다는 사실이 어떻게 다가오십니까?

저는 가끔 개신교에서 나온 서적을 읽습니다. 개신교에서는 하느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 성경에 대해 연구를 많이 한 그들의 생각은 어떤 지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이런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미사는 사제가 포도주의 형태로 그리스도의 피를 마시고 경배자들이 빵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취하는 상징적인 희생제이다.’ 라고요. 과연 그들의 생각대로 여러분도 우리의 행위가 그저 상징적인 것으로 여겨지십니까?

  1독서의 모세가 소를 잡아 번제물을 올린 이유는 자기들 대신에 제사를 올릴 그 무언가가 필요해서였습니다. 우리가 명절 제사상에 올리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복음에서 예수님은 소를 잡기 보다는, 당신 자신을 내어주시며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라고요.

여기의 몸은 예수님의 물리적인 육신만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헌신하는 예수님 자신을 의미합니다. 피는 몸 속에 흐르는 혈액만이 아니라 생명 자체, 즉 예수님 자신을 가리키며 피를 흘리는 것은, 남을 위해 극도로 죽기까지 헌신함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먹는다 라는 말은 철저하게 인격적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현실 속에 살면서도 그 안에는 진정한 삶에 대한 갈망이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형상은 빵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당신의 이 말씀으로 실체는 더 이상 빵이 아니라 당신의 몸을 통하여 참된 인격적인 일치의 시간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을 하셨잖습니까?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물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뭅니다.”

  세상이 가벼워지고 부담스러운 것을 피하려는 세상이 되면서 어떻게든 편한 것만을 찾으려 합니다. 하지만 편한 것도 한계는 있기 마련입니다. 편함의 끝에 다다라 보지만, 뭔지 모를 부족함에 고개를 흔들 때가 있습니다. 즐기고 신나게 놀았지만, 돌아서고 나니 뭔가 허한 마음을 채울 길이 없었던 때를 기억해 본다면 우린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가끔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당신의 고결한 몸을 우리에게 허락해주시는 것을 보면서도 난 그것을 모실 만한 자격이 없어.’ 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넘치는 사랑을 베푸시는 사랑을 보며, 우린 깨달아야 합니다. 자격이 있어서 사랑을 주시는 것이 아님을요. 세상은 사람을 볼 때 얼마나 자격을 갖고 있고 스펙을 갖췄는지에 대해서 보지만, 그것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하지만 당신은 다르십니다. 온갖 죄를 짓고 있음에도, 불완전함이 보여도 당신은 그 몸을 허락하십니다.

  이제 우리도 주님을 몸을 모시면서 이웃도 바라봐야 하겠습니다. 주님이 보여주신 사랑의 모습처럼 남들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는 지 말입니다. 그리고 무엇으로 자신을 채우고 있고 앞으로 나가야 하는 지도 봐야겠습니다. 더 이상 헛된 것에 눈과 마음이 쏠리지 않기 위해서 말입니다. 진정 나를 채워주실 분은 오직 당신이기 때문입니다.

댓글 2

  • 2009년 6월 14일 오전 8:26

    +주님을 찬미합니다! 스. 파 신부님! 休~ 잘보내셨는지요? 긴~머리 기타 달랑하나~ ㅎㅎ 영원한 방랑자 산쵸~ 부럽습니다^^*

  • 2009년 6월 14일 오후 10:33

    정말 자유롭게 살고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