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3주일. 지혜1,13-24;고린토 2서 8,7-15;마르코 5,21-43
찬미 예수님. 일주일동안 교우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우린 매일매일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 사람들 중에는 신앙인도 있고 비신앙인도 있고 냉담자도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나의 신앙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이런 감정이 떠오른다는 사실입니다. ‘현실과 너무 딱 붙어사는 사람에게서 텁텁한 느낌이 든다.’ 는 사실 말입니다.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나도 현실적인 사람이라 여기지만, 말하는 상대는 나보다 더 현실적인 모습을 갖고 있어 그리 개운하지만은 않은 현상을 보곤 하는데요. 혹시 이런 현상은 저 혼자만의 생각일까요? 저는 이런 현상을 보며 곰곰이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습니다. ‘왜 너무 현실적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텁텁하고 건조함을 느낄까?’ 그러다 저는 답을 하나 얻고 말았습니다. 그건 내가 이미 주님으로 인한 신비의 차원의 세계를 맛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신으로 인해 변화되고 달라지는 모습을 체험해 봤기에 그저 현실속에 갇혀사는 사람들에게서 개운하지 못한 감정을 느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두 가지 예수님의 치유이야기가 맞물려 있는 상황입니다. 하나는 야이로라는 회당장이 와서 자기 딸을 살려 달라는 요청이 들어옵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요청을 받고 그 집에 가는 도중 또 하나의 사건으로 들어갑니다. 그 사건이란 12년간 하혈하는 여인이 주님의 옷을 잡으며 병이 치유되는 이야긴데요. 그녀의 간곡한 바람으로 인해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여인과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딸아이가 죽게 되었으니 더 이상 오시지 않아도 된다는 얘길 듣습니다. 그러자 당신은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하지말고 믿기만 하여라” 라고요. 그러시면서 딸을 살려내시는데요.
여기서 보여주는 두 가지 치유 이야기는 주님과 나의 관계가 어떠한 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하혈하는 여인은 12년이나 병을 앓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숫자는 뭔가를 암시해 주는 것이 많습니다. 여기서 12라는 숫자는 ‘온전함, 관계맺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녀는 병을 앓으면서 모든 인간관계가 깨어져 버렸습니다. 하소연을 하고 모든 방법을 써보았지만 그녀는 회복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녀가 이제는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로지 주님의 옷에 손을 대기면 하면 나을 것이라는 영성적인 마음을 갖고 다가갔기에 기적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회당장의 딸이 죽어버리자 그 곳 사람들이 나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따님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라고요. 죽어버렸으니 이제 끝났다고 생각한 것이었지요. 하지만 주님은 딸의 아버지 회당장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하지말고 믿기만 하여라” 라고요. 아버지가 자신의 무능을 인정하고 딸에 대한 집착을 버린 채 하느님의 손에 내 맡길 때야말로 비로소 딸은 건강을 찾을 수 있다는 이야깁니다.
결국 두 가지 이야기는 같은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소녀나 그 여인이 가지고 있던 일말의 잠재력을 신뢰하셨고 그 속에서 참된 생명력을 일깨우시는 모습을 말입니다. 즉 모든 것을 인간적인 관계에만 매달리지 말고 주님의 힘을 믿을 때 우린 새로운 차원을 볼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우린 얼마 전 국내 최초로 존엄사 할머니의 보도를 접했습니다. 법원은 산소마스크를 떼면 모든 것이 끝날 줄 알고 병원에 허락했지만 당신이 주신 숨은 계속 붙어있었습니다. 이 사태를 보며 여러분은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이 시점에서 우린 2독서의 말씀을 떠올려야 하겠습니다. “균형을 이루게 하자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 여러분이 누리는 풍요가 그들의 궁핍을 채워주어 나중에는 그들의 풍요가 여러분의 궁핍을 채워준다면 균형을 이루게 됩니다.”고요. 여러분에게는 무엇이 풍요롭고 무엇이 궁핍합니까? 혹시 인간적인 시각은 그야말로 풍요롭지만 주님의 힘을 보는데는 그야말로 부족한, 궁핍한 상태에 놓인 것은 아닙니까? 우린 현실을 살면서 균형감 있는 삶을 살아야 건강할 수 있습니다. 영과 육의 조화..이것이 우리가 바래야 할 삶이니 말입니다. =잠시 묵상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