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6주간 금요일

2009. 7. 24. 오전 11:5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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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 16 주간 금요일. 탈출기 20,1-17;마태오 13,18-23

아이들을 보면 가끔 반찬투정하면서 편식하는 어린이를 볼 수 있습니다. 맛있는 것만 먹겠다는 모습. 사람이라면 당연해 보입니다. 우리 어른들도 좋은 집 찾아다니며 먹으니까요. 하지만 편식은 나중에 건강에 악영향을 주기에 골고루 균형을 갖춰 먹게끔 하는데요. 아이는 어려서 그런다지만 혹시 우리 어른들도 좋은 것, 편한 것만 찾겠다는 심산으로 사시진 않는지요.

오늘 독서에서는 십계명을 이야기 하십니다. 여러 조항이 다 다른 것 같이 느껴질 수 있고요. 다 지켜야 하는 부담감이 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복음에서는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들면서 세상의 씨가 뿌려지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나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요. 성경을 읽다보면 구약의 하느님과 신약의 하느님이 그저 다르게만 보일 때가 많아 보입니다. 그래서 오해하고 한 쪽의 하느님만을 더 선호하는 경향도 보입니다. 게다가 하느님은 무서운데 예수님의 모습은 사랑의 모습만 있는 것 같아 오해하는 경향도 있는데요. 복음의 말씀에 나오는 씨가 돌밭이나 가시덤불에 뿌려져 뿌리가 내리지 못한 것은 자기 식대로 받아들이고픈 마음이 더 강했기에 주님의 참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어느 한 쪽에만 메여 있다 보면 진정한 것을 발견하기가 어려운데요. 우린 마르타와 마리아의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마르타는 예수님 수발에 바빴고 마리아는 발치 곁에 앉아 있었지요. 내용 전개상은 마리아가 더 낫다고 얘기가 되고 있지만 실은 마리아가 주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건 마르타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마찬가지로 마리아의 관상과 마르타의 활동이 함께 가야 신앙생활은 빛이 날 수 있습니다. 치우치지 않는 모습은 바로 하느님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계명은 많지만 결국 하느님 사랑, 이웃사랑이라는 균형잡힌 대명제가 예수님에게서 실천되고 이젠 우리도 그런 생활을 해 나가게 되었는데요.

편식하는 어린이를 보며 우리의 삶을 다시 바라봅니다. 한쪽에 치우쳐 있는 삶은 아무래도 건강치 못한 삶인데요. 내가 하고픈 것에 매달려 진정한 것은 보지 못하는 그런 삶이 아닐까 잠시 묵상토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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