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마르타 축일. 요한 1서 4,7-16; 요한 11,19-27
옛날 이야기로 시작하겠습니다. 한 어린 소년이, 자기 애완용 거북이가 연못 옆에 벌렁 누워서 죽은 듯 가만히 있는 것을 보며 슬픔에 잠겼습니다. 이를 본 아이 아버지는 위로를 하느라 최선을 다하기 시작했습니다. “울지 마라. 얘야. 내가 거북이를 위해 멋진 장례식을 준비하는 것이 어떻겠니? 작은 관을 만들어 그 안에 비단을 깔고, 장의사를 불러 묘비를 세워 거북이의 이름을 새기자. 그리고 매일 같이 그 무덤에 싱그러운 꽃을 갖다 놓고 무덤 주위에 말뚝을 세우는 거야.” 소년은 눈물을 그치고 그 계획에 열중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이 다 준비되자 아버지, 어머니, 하녀 할 것 없이 연못을 향해 행렬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시체’ 가 없어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거북이가 죽은 줄 알았는데 그만 연못에서 즐겁게 헤엄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자 소년은 너무도 실망한 나머지 이렇게 외쳤습니다. “아버지~ 우리 저 거북이 죽여요....” 정말로 소년이 관심 있어 한 것은 무엇이었겠습니까? 거북이를 향한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가슴이 두근거리는 기쁨을 맛보려 했던 것만은 아닐까요?
오늘 독서에서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하며 진정한 사랑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 사랑은 누구의 욕심을 채워주는 사랑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 머무르며 그를 일깨워주는 사랑인데요. 복음의 마르타는 심통을 부립니다. 예수님이 계셨다면 자기 오빠가 그렇게 죽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마음에서였습니다. 이제 곧 라자로를 살리려는 주님의 뜻은 상관없이 그저 내 뜻이 이뤄지지 않음에 화가 나 있는 상태인데요.
여러분의 사랑방식은 어떻습니까? 아까 거북이 이야기처럼 그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뤄지길 바라십니까? 아니면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사랑을 하고 있습니까? 헤아려주는 참다운 하느님의 사랑은 강요하거나 자신만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상대를 향합니다. 그런데 우린 가끔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사랑을 하던데요.. 자신의 두근거리는 마음을 벗어날 때 진정한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