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8 주일미사. 탈출기 16,2-15;에페소 4,17-24;요한 6,24-35
찬미 예수님. 일주일 동안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러분은 이 단어를 들으면 어떤 생각들이 떠오르십니까? 캄캄한 어둠, 밤,이런 따위 말입니다. 밝은 것에 반대되는 개념들이니 아마도 안 좋은 것들, 마치 악마에게서나 나온 것들 같은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갈멜 수도회의 십자가의 성 요한이라는 성인에게서 나온 개념들이라면 여러분은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이 개념을 설명하기에 앞서서 먼저 독서와 복음과의 연관을 말씀드리면서 이 개념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독서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에게 따지기 시작합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장 낙원에 땅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지금 들어가지도 못하고 고생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기 냄비 곁에 앉아 빵을 배불리 먹던 그때, 이집트 땅에서 죽었더라면~그런데 당신들은 모조리 굶겨 죽이려고 우리를 이 광야에 끌고 왔소?” 라 따집니다. 당장 탈출할 때는 먹을 것보다 ‘자유가 더 좋다’ 하던 사람들이었지만 이제 사정이 달라진 듯 이야기 합니다. 아무래도 자유도 좋지만 감각으로 만족을 시켜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에서도 따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 아예 대놓고 보여달라 말합니다. 이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그저 옛날 에 있었던 이야기로만 들리지는 않습니다. 우리도 ‘하느님을 봐야 믿겠다.’ ‘지금 이 고생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더 깊은 믿음이 나올 수 있겠는가?’ 하고 따지는 우리와 그리 달라 보이진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시 앞서 이야기한 십자가 성 요한의 밤의 개념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는 하느님과의 합해지는 과정을 ‘밤’ 이라 표현합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우선 우리들의 영혼은 감각을 통해 하느님을 느끼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신앙의 출발선상에서 현세에 대한 욕망을 끊어야 느낄 수 있는데, 끊어야 하는 이 박탈감과 결여의 과정이 우리에게는 밤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과 합해지기 위해서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그 ‘믿음’ 이라는 것이 그저 사회에서 말하는 이성적인 사람에게는, 깜깜한 어둠처럼 암담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하느님과 만나는 종극점은 너무나 밝기 때문에, 마치 태양을 직접 눈으로 보는 것과 같은 밝은 상태에서는 눈도 제대로 뜰 수 없는 상태이므로 어둔 밤과 같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럼 왜 신앙을 가지려면 갖고 있던 감각부터 정화시켜야 하냐고 물어보신다면 이렇게 전 답하겠습니다. 사람은 감각을 통해 여러 가지를 배웁니다. 그런데 욕망도 감각을 통해서 나오지요. 그런데 욕망을 통해 사람은 죄를 짓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죄를 통해서 원래 갖고 있던 감각의 조화로움이 깨져버린다는 것입니다. 마치 지혜로웠던 솔로몬 왕이 감각적인 욕망에 빠졌기에, 후대에는 그 지혜로움을 잃어버린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 2독서에서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지난날의 생활 방식에 젖어 사람을 속이는 욕망으로 멸망해 가는 옛 인간을 버리고 여러분의 영과 마음이 새로워져 진리의 의로움과 거룩함 속에서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새 인간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라고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감각의 벽을 너머서지 못합니다. 그저 그 앞에 주저앉고 맙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너무 열심히 믿으면 다칠 수 있어..’ 누가 그렇게 가르쳐 준 적이 있습니까? 마치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여우가 자기 키보다 높이 매달린 포도가 먹고 싶었지만 결국 따먹지 못하자 이렇게 외치지요..“저 포도는 실꺼야”.... 그저 갖고 있던 감각만을 만족하는데 그치려는 신앙은 더 큰 차원을 보지 못합니다. 결국 포도의 달콤함을 맛보지 못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이태원 본당 교우 여러분!!!
매일, 매주 맛보는 성체를 모시면서 감각으로는 맛있음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주는 진정성을 보는 사람이라면 참 사랑을 보게 되는데요. 여러분은 감각을 넘어서는 믿음을 갖고 계십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