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2주일

2009. 8. 29. 오후 2:3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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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연중 22주일미사. 신명기 4,1-8;야고보 1,17-27; 마르코 7,1-23

 여러분도 잘 아시는 영화중에 ‘쇼생크 탈출’ 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팀 로빈스와 모건 프리만이 나왔던 러닝타임만 142분이라는 긴 시간의 이 영화는, 감옥에서 벌어지는 풍경이 나옵니다. 거기에서 주인공은 아니지만 50년간 복역하며 감옥 도서관의 사서로 있던 브룩스란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이미 워낙 나이가 많아졌기에 보호관찰대상이 되면서 가석방 판결을 받게 되자 그는 좋아하기 보다는 오히려 칼부림을 하며 동료를 찌르려 합니다. “난 이 길 밖에 없어.. 난 여기 있고 싶어” 결국 그 할아버지는 절차대로 출소를 하게되고  동네 수퍼마켓에서 일을 합니다만 누릴 수 있었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브룩스 여기 왔었다.’ 라는 글을 새기고 숙소에서 목을 멥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렇게도 그리던 자유가 내 앞에 펼쳐졌는데 말입니다. 그 사연을 전해들은 그를 오랫동안 지켜본 동료죄수인 모건 프리먼은 말합니다. ‘감옥생활이란 거 말야? 처음에는 싫지만.. 차츰 길들여지지..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 벗어날 수가 없어. 그게 길들여지는 거야.’  그 소리를 들은 동료들은 저마다 ‘나는 그렇게는 안 살겠다. ’는 말을 합니다만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여러분의 삶은 진정 자유롭습니까? 아니면 차츰 길들여지고 있습니까?

  50년간 살았던 브룩스도 감옥에서 길들여졌는데,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지냈던 기간은 430년이었습니다. 아무리 이집트 사람의 횡포가 극에 달해도 430년의 시간은 이미 저항하는 시간을 지나, 그야말로 숙일 수 밖에 없고, 받아들이고, 길들여지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1독서에서 다시 새로운 삶을 살고자 이런 말을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주 너희 하느님의 명령을 지켜야 한다. 너희는 그것들을 잘 지키고 실천하여라. 그러면 이 위대한 민족은 정말 지혜롭고 슬기로운 백성이구나 말할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또 다른 속박일까요? 아니면 진정한 자유일까요? 대다수가 자유를 누리기 원한다면서 실제로는 그 자유를 누리기 위한 순서를 어떻게 지켜야 할 지는 잘 모를 때가 많아 보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만 하는 것이 자유가 아니지요. 그런 것은 방종으로 이어집니다. 진정한 자유를 누리려면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가치보다, 나를 위하시고 헤아려주시는 하느님의 뜻을 알려는 의도를 알 때 진정한  가치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를 꾸짖으며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이사야가 너희 위선자들을 두고 옳게 예언하였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열심했던 율법학자들이 호된 꾸짖음을 들은 이유는 자신들이 살기위해 시스템을 점차 갖추고 유지하려다보니 이젠 그 단체가 회개와 쇄신을 하면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기 보다는, 그저 현 체제를 유지하려는 차원에 맴돌았기 때문입니다. 이 백성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기보다, 그저 자신들의 지금의 안락함만을 우선시 했기 때문인데요. 혹시 여러분은 그런 분이 안 계시는지요.. 내가 이 만큼 일궈놓은 일이 유지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마음에 드는 사람만 골라 쓰려고 한다거나, 좀 더 예산을 타내기 위해 뭔가를 부풀리거나 험담하는 일 등 말입니다. 이미 이런 사람들은 자신에 속한 것에 길들여져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2독서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을 구원할 힘이 있습니다.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라고요. 그러면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는 방법을 가르쳐 드릴까요? 첫째, 주님의 말씀이 어떤 것인지 헤아리시고요. 둘째로 그 말씀을 내 안에서 흐르게 하여 흘러가는 혈액처럼 되게 하십시오. 영양소를 먹었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소화되어 몸에서 흘러야 합니다. 즉 말씀을 듣고 되새기며 실천하는 차원입니다. 셋째. 실천해도 안된다는 부정적인 시각을 버려야 합니다. 꽃을 피우기 위해 물을 줄 때, 한 번 물 주었다고 금방 꽃피지 않습니다. 계속 시간에 맞춰서 줘야 멋진 꽃을 피워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태원 본당 교우 여러분.

우리는 참 약한 사람들입니다. 눈과 손에 보이는 것에서만 만족하려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우리 자신을 길들이게 만들고, 앞을 보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는데요. 여러분은 본인이 만든 감옥에 자신이 갇히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여기에 말씀이 있습니다. 그대로 해 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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