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3 주간 월요일

2009. 9. 7. 오전 12:5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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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3 주간 월요일. 콜로새서 1,24-2,3; 루카 6,6-11

  저는 어릴 때 가요를 많이 부르고 다녔습니다. 학교를 갈 때도 일부러 2-3정거장은 차를 타지 않고 다녔습니다. 시끄러운 찻길을 따라 걸으며 목청껏 노래를 부르는 것이 중,고등학생 때 스트레스 해소법이었습니다. 게다가 연습장을 하나 사면 앞에는 보통 학생들처럼 영어단어, 수학문제를 풀고 뒷면부터는 가요 가사를 적으며 외우는 게 제 취미였습니다. 그랬던 제가, 그렇게 노래만 불렀던 제가 신학교에 가게 되었습니다. 신학교란 곳이 말입니다. 여기 수녀님들도 계시지만 평소에 참 조용해야 하는 곳입니다. 아침엔 소침묵, 밤에는 대침묵으로 갈라놓고 떠들지도 못하게 하는 곳입니다. 소리도 한번 시원하게 지르기 어려운 곳입니다. 항상 노래만 불렀던 제가 그곳에 있자니 참 버거웠습니다. 게다가 청소 때에도 노래도 부르지 못하고 조용하게 쓸고 닦아야 한다는 게 예전 적성상 참 어이없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제 머리에서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안되겠다. 이러다 내가 돌아버리겠다. 그래! 노래를 부르자, 청소를 하더라도 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하는거야!!!” 그러면서 제 입에서는 막상 이런 노래가 흘러나왔습니다.... 주여~ 임하소서..” 아니? 내가 왜 이런 노래를? 하면서 놀랐지만 저도 모르게 저의 삶은 당신의 삶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주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주님이라고 그 규정을 몰랐겠습니까? 헌데 왜 율법학자들이 노리고 있는 곳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셨을까요? 그건 하느님의 삶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시려 했던 것이지요. 초기 신앙은 그저 십계명, 주일미사 잘 나오기 수준에 그칩니다만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서 우리의 생활은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주님의 자유로운 삶을 행동으로 옮겨갈 수 있습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주님의 생각으로 살고, 당신의 삶으로 실천되는 삶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되기 위하여 오늘도 이 아침에 나왔습니다. 평소에 생각으로도 잘 안했지만 자연스레 당신의 마음을 헤아리며 그렇게 표현되는 삶. 우리에겐 나도 모르게 나오는 그런 사랑의 실천, 마음 씀씀이를 말이지요 그건 당신을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선물일 것일텐데요. 여러분도 그렇게 살고 싶지 않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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