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6주간 주일미사

2009. 9. 27. 오전 10:5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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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연중 제 26 주일미사. 민수기 11,25-29;야고보 5,1-6;마르코 9,38-48
 
찬미 예수님. 일주일동안 교우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벌써 9월의 마지막 주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덥기만 할 것 같던 날씨도 이제 바람이 확실히 바뀌었다는 사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드시는지요. 결국은 계절도 시간도 ‘흘러간다’ 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기다리는 속에서 ‘뭔가가 이뤄진다’ 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여기 앉아 계신 교우분들의 모습도 마찬가지라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만들고 인위적으로 계산하는 삶을 살기도 하지만 결국엔 그분의 섭리의 물결 속에 나 자신을 맡기는 삶에서 편안함을 느끼는데요.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하는’ 것에 익숙해 있습니다.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것만이 가치가 있고 능동적으로 무엇을 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도, 용서도, 기도도..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기도를 통해 인간은 자기가 목표한 지점에 산 정상에 오르듯이 도달 하려고만 합니다. 하지만 다른 것과는 달리 신앙의 삶은 그렇게 자신의 능력으로만 도달되는 것이 아님을 실감하는데요. 아마도 이런 생각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의 평상시 삶이 그래왔고, 몇 십년 동안 그런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에 그런 생각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은 때때로 자신이 이룰 수 없는 일을 자기의 능동적 힘에 의지하여 설계하고 밀고 나가면서 한없이 쫓기게 되고요. 설계한 것을 이루지 못해서 초조해 하고 실망하고 좌절을 느낍니다. 이제민 신부님의 저서인 제3의 영성을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제1의 인생이 능동의 영성에 바탕을 둔 것이라면 제2의 인생은 능동의 영성이 지닌 한계를 체험하는 기간이고, 제3의 인생은 수동의 영성에 바탕을 둔 인생이라고요. 뭔가 기다리고 수동적인 삶이 되는 것이 그저 실패자의 모습처럼 여겨지십니까? 한강에서 낚시를 하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냥 지나가면서 보기엔 고기를 낚는가보다 여기지만 실은 불법을 자행하는 분도 꽤 계십니다. 일명 ‘훌치기 낚시’라 해서 미끼로 낚시를 하지 않고 세 방향으로 뻗어있는 바늘을 가지고 지나가는 물고기의 몸을 걸어서 낚시하는 형태를 말하는데요. 당연히 물고기의 몸은 만신창이가 됩니다. 그럼 진정한 낚시는 어떤 것이겠습니까? 그저 물고기가 물어 와 주길 기다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자작나무나 버드나무과 수꽃이 어떻게 피는 지 아십니까? 바로 씨앗이 바람에 의해 운반되어 수정되기를 기다리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성도 그분의 안배와 배려에 기다리는 삶이어야 하는데요.
 
오늘 1독서에 “주님께서 구름 속에서 내려오시어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그에게 있는 영을 조금 덜어내시어 일흔 명의 원로들에게 내려 주셨다. 그 영이 그들에게 내려 머무르자 그들이 예언하였다.” 란 표현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본 여호수아가 “그들을 말리셔야 합니다.” 하자 모세는 이런 말을 하지요. “차라리 주님의 온 백성이 예언자였으면 좋겠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당신의 영을 내려주셨으면 좋겠다.” 고요.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제자들도 “저희가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사람을 보았는데 우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그가 그런 일을 못하게 막아보려고 했습니다.” 하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라고요.
 
우리의 삶은 그분의 영으로 젖어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억지로 무언가를 해보려는 사태의 문제성을 최근 인사청문회를 통해 확인하고 있잖습니까? 그런 사안을 보면서 진정 그분의 삶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분이 원하시는 삶에 나 자신을 맡기는 삶이어야 하는데요. 무언가 내 뜻대로 하다가 서로의 기분만 상해버린 경우를 그동안 수 차례 경험해 본 분들이라면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태원 본당 교우 여러분!
그분은 우리가 행복해지길 바라십니다. 그럼 난 어떤 생각을 품으며 살아야 할까요?
강에서 수영할 때 잘하려면 물결의 흐름을 잘 이해해야 하고 톱으로 나무를 썰 때에도
나무결을 잘 알고 썰어야 하듯이 그분의 섭리를 알고 기대는 삶 속에서 진정한 참 뜻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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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 26 주일미사. 청소년 미사.
 
일주일 동안 학생 여러분 안녕하셨어요?
1박2일에 나오는 은초딩이란 사람을 아실 겁니다. 은지원이란 사람이지요. 1997년 젝스키스란 그룹으로 나와서 폼생폼사 등을 발표하며 당시 H.O.T와 쌍벽을 이루던 최고의 아이돌이었습니다. 지금 그로부터 12년이 흐른 다음, 최근 이런 인터뷰를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룹이 아무리 인기가 있어도 영원할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는 게 우선이다. 한 때 잠깐의 인기에 빠져서 판단을 흐리는 경우가 많다. 인기는 잠시 잠깐이다. 그룹 밖에서 어떻게 활동할 것인가 멀리 보고 활동 계획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
언젠가 홀로 서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이면 미래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든다. 사실 나도 그룹 활동을 할 때에는 가수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이것저것 가리다 보면 활동이 제한적이 된다. 자연스럽게 대중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 십상이다. 다행히 난 활동을 시작하니 의외로 예능 프로그램이 나와 잘 맞았다. 그룹 밖으로 나와서 업계 현실과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가 이런 결정을 내리면서 프로그램에서 망가지기를 거부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단지 먹고 살기 위해서? 는 아닐 겁니다. 그 자신이 할 수 있는 바를 찾기 위한 몸부림 속에서,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얼까 고민하다가 지금의 자리를 찾은 것인데요.
 
벌써 9월의 마지막 주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계속 더울 것만 같았던 날씨도 시간과 계절의 흐름 앞에서는 맥을 못 추고 가을이라는 때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은 흐릅니다. 물도 흐르고, 계절도 흐르고, 나이도 먹게 됩니다. 자신은 안 늙을 것 같고, 자신은 영원히 인기 있을 것 같지만 물리적인 시간의 개념에 지배를 받는 인간은 변화속에서 자유롭지 못하지요.
그럼 나는 어떻게 살아야할까요? 무한하신 하느님을 믿기는 하지만 유한하고 시간의 지배를 받는 나는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야 할까요?
 
오늘 1독서에 “주님께서 구름 속에서 내려오시어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그에게 있는 영을 조금 덜어내시어 일흔 명의 원로들에게 내려 주셨다. 그 영이 그들에게 내려 머무르자 그들이 예언하였다.” 란 표현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본 여호수아가 뭐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그들을 말리셔야 합니다.” 하자 모세는 이런 말을 하지요. “차라리 주님의 온 백성이 예언자였으면 좋겠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당신의 영을 내려주셨으면 좋겠다.” 고요.
부족한 우린 하느님의 영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오시고 구원사업을 끝낸 지금의 이 시대는 성령이 활동하시는 시대입니다. 즉 성령께서 나에게 무슨 말을 하시는가 귀 기울이는 시간인 겁니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예전의 것만을 붙잡다 보면 안되는 불안한 삶이라는 생각 속에서 나를 세우기 위해서는 그분이 내게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물어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나는 나만의 생각으로 살꺼야.” 라는 친구가 있을 지 모르지만 그 나만의 생각은 나 혼자 무인도에서 살지 않는 한 부딪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지치고 외로움을 겪을 수 있는데요. 그럴 때 우리에게 위안이 되어주시는 분을 나는 찾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주님은 우리의 친구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여기는 자세 속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는데요.
 
이제 추석이 지나면..중간고사 기간이 다가옵니다. 시험기간이 다가올수록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현실을 보게된다는 이야기지요. 그럴 때 예수님이란 분은 그 성령은 나와 어떤 관계가 있는 지 잘 살펴본다면 아마 답이 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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