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에페소 4,1-13;마태오 9,9-13
예전 예비 신학생들을 데리고 면담을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 중 한 명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기 친구를 비롯한 아무에게도 자기가 예비 신학생인지 밝히지 않았다.’고 말입니다. 궁금했던 제가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만약 자신이 예비 신학생인지 알게 되면 “네가 신부님이 된다고?” 하는 말을 들을까 두려워 그랬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습니다. 사실 친한 친구끼리는 서로를 가볍게 보는 습성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수단을 입게 되었을 때도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 4학년 착의식이 있을 무렵, 상당히 기쁘고 설레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자격도 없는 내가 이 옷을 입을 수 있단 말인가?’ 하며 고민했던 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자격으로만 따진다면 여기 있는 우리 모두는 세례받을 자격없습니다. 자격으로만 따진다면, 성당에 나와 기도드릴 자격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하시면서 세리 마태오나 무지렁이 어부출신들을 당신의 제자로 부르십니다. 과연 왜 그랬을까요? 오히려 똑똑한 사람들을 부르시면 교회가 더 번창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예전 학생시절 뛰어났다는 친구들을 보면 대부분이 자신의 머리를 믿는 모습을 보이곤 합니다. 그러다가 어른이 되어 한계에 부딪히다 보니 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애들 때보다 오히려 커서 문제를 보이는 경우를 보곤 합니다. 하지만 평범하고 조용하며 뛰어나지 않았던 이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기 자신에 대해 이런 부분을 인정합니다. ‘난 그렇게 잘 나지 않았다. 난 배울 점이 아직 많아’ 하고 말입니다. 무언가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 그것은 또 다른 세상을 볼 줄 아는 시각이 열려 있는 개방적이고 겸손한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랐던 많은 이들은 바로 그러한 이들이었습니다. 세상이 말하는 자격은 없었기에 오히려 겸손과 충심을 가지고 주님께 다가가는 진정한 신앙인을 만들게 하였는데요.
같은 동네에 살지만 안 지 오래된 사이였지만 참된 신앙을 가진 우리 이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내가 따라가지 못하는 그들의 성덕을 오늘 한번 들여다 보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예수님이 마태오를 찾아내었듯이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