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8 주일 미사.
찬미 예수님. 일주일간 청년 여러분, 교우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요즘 음악을 들어보셨습니까? 차를 타고 다니면서 또는 mp3를 들으면서 제일 손쉽게 할 수 있는 게 음악듣기입니다. 그런데 10여년 전부터 이 노랫말 가사들이 참으로 직설적으로 쓰여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렇게 직설적이지만 한편으로 수긍하게 만드는 노랫말도 있는데요. 신해철이란 가수가 부른 예전 노래 중에 이런 노래가 있었습니다.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머야’ 라고요. 다분히 발칙스러운 노래 제목입니다. 그 중에 이런 가사가 실려 있습니다. ‘이거 아니면 죽음, 정말 이거 아니면 끝장, 진짜 내 전부를 걸어 보고 싶은 그런...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머야’ 라고요. 저는 이 노래를 간만에 듣게 되면서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럼, 내가 원하는 것은 무언가? 신앙인으로서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라고요. 여러분은 신앙인으로 무엇을 바라십니까? 그저 가족들의 행복? 내 삶의 평안함? 이런 소원은 다른 종교에도 다 있습니다. 단순히 기복적이고도 소원풀이 식의 하느님이 우리에게 매력을 주지 못함을 우린 알고 있습니다. 그럼 그럼에도 우린 왜 여기에 모여 와 있습니까? // 그렇게 내 맘에 들어가 보겠습니다. 혹시 내가 신앙을 갖고 싶은 이유가 ‘하느님을 만나고 싶고,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싶다.’ 는 것은 아닙니까?
오늘 1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기도하자 나에게 지혜의 영이 왔다. 온 세상의 금도 지혜와 마주하면 한 줌의 모래이고 은도 지혜 앞에서는 진흙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나는 지혜를 건강이나 미모보다 더 사랑하고 빛보다 지혜를 갖기를 선호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지혜는 다름 아닌 하느님의 영인데요. 하느님을 만나는 사람들은 현세의 재물을 그다지 크게 생각하지 않아 보입니다. 성경의 큰 인물이나 동서양의 현자라 일컬어지는 사람들의 집안은 비록 경제적으로 보잘 것 없었지만, 그들의 삶 자체는 절대 가난하지 않았는데요. 그들이 비록 내세울 것 없는 형편이었지만 곧게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평범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것보다 더 큰 것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자신의 시간과 돈을 할애하면서까지 더 큰 무엇을 선택하고 싶으십니까? 오늘 복음에 어떤 청년이 나옵니다. 그는 달려와 예수님께 묻습니다. “선하신 선생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도 우리와 비슷한 마음이었나 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기본기부터 다져주려고 하느님이 알려주신 십계명을 말씀합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꾸합니다. “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 제가 그런 단계에 머물러 있는 줄 아셨습니까? 전 그런 낮은 레벨에 있지 않습니다. 아주 자신있어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이렇게 보시죠. “그를 사랑스럽게 보시며..” 라고요.// 기본적인 계명을 잘 지키는 이 청년에게 필요한 것을 찾고 계십니다. 그건 바로 실천이지요. 학문이 죽은 학문이 되지 않으려면 체험이 필요하듯이, 신앙이 더 이상 죽은 신앙이 안 되려면 바로 행동에 따른 실천이 필요합니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하지만 그 청년은 거기서 돌아서고 맙니다. 자신의 한계를 본 것이죠. 신앙의 단계로 들어갈수록 나를 붙잡는 걸림돌, 한계를 봅니다. 사실 그건 대단히 중요한 관찰입니다. 자신이 무너지는 것을 보니까요. 하지만 누구는 거기에서 굴복하고 말지만, 누구는 그 단계를 넘어 다른 단계로 나아갑니다. 2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분 눈에는 모든 것이 벌거숭이로 드러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드러내게 만드는 그분의 지혜의 말씀의 영, 두렵지만 그로인해 나는 주님을 만납니다.
영성체 때 우린 이렇게 외치잖습니까?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주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 내 안에 당신을 모셔 무엇이 낫기를 바라십니까? 무엇이 이뤄지길 바라십니까? 진짜로 여러분이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알 때 지금 걸림돌에 넘어져도 한계가 보여도 자신이 초라하게 보여도, 우린 당신을 바라보며 더 크게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나의 모든 것이니까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