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7 주일미사. 창세기 2,18-24;히브리 2,9-11; 마르코 10,2-16
찬미 예수님. 일주일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짧았던 추석연휴기간 잘 보내셨습니까? 벌써 그 시간도 마지막 날이 되었고 내일은 다시 정상괘도로 돌아와야 하는 시간이 왔는데요. 그럼 그 속에서 만난 가족, 집안끼리 무슨 이야기를 하셨습니까? 정말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하셨는지요, 아니면 그 반대의 이야기로 힘드셨습니까?
동화 같은 이야기를 하나 해보렵니다. 어느 동네에 정선이라고 하는 아주 이쁘고 귀여운 여자 아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정선이는 이웃집 숫염소인 윤상이와 친구가 되었는데요. 매일 아침 정선이는 잡초와 상추를 뽑아서 염소인 윤상이에게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러자 둘은 아주 친해져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요. 그런데 어느 날, 정선이는 윤상이의 식단을 바꾸어 주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상추 대신 허브를 가져다 윤상에게 갔습니다. 그런데 허브를 조금 씹어 본 윤상은 향이 강했는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은 듯 옆으로 밀어 놨습니다. 그러자 이를 본 정선이는 윤상의 뿔 한 쪽을 잡고 허브를 어떻게든 먹이려 애썼습니다. 그러자 윤상은 정선이를 뿔로 받아 버렸는데요. 처음에는 살짝 받았지만 점차 정선이가 집요하게 고집을 부리자 나중에는 아주 힘껏 받아 버렸습니다. 그러자 정선이는 그만 비틀거리다가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습니다. 화가 잔뜩 난 정선이는 물러서서 윤상을 한참 바라보다가 집으로 가서 다시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며칠 후 정선이의 아버지가 왜 윤상이와 놀지 않느냐고 물으니 정선이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윤상이가 저를 거절했어요.”.... 지금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내가 맺은 서로의 관계를 끊는 아주 쉬운 방법을 말씀드렸습니다. 그 관계를 가장 손쉽게 끊는 방법은 바로 자기의 방식을 고집하는 것인데요. 혹시 친구나 연인, 혹은 부부끼리 이렇게 하고 계신 것은 아니신지요.
오늘 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 하시면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 하십니다. 그런데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 이혼장을 써주고 아내를 버려도 되냐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답하십니다. “그건 너희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모세가 그런 계명을 기록하여 너희에게 남긴 것이다. 하느님께서 맺으신 것을 사람이 갈라 놓아서는 안된다.” 라고요.
면담을 하다보면 많은 분들이 서로의 관계를 힘들어 하십니다. ‘제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아요, 저를 무시합니다. 이렇게는 정말 못 살 것 같아요.’... 혹시 말씀하시는 분께 여쭙겠습니다. 상대에게 ‘내 말을 좀 들어줬으면....’ 하면서 다가가지 않으셨습니까?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는 방법은 참 많습니다. 그 중에 대부분은 자기의 의견이 통과될 때, 들어 먹힐 때 통쾌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것이 좌절되었을 때는 그 때부터 힘들어지는데요. 나하고 상대방이 아무리 친하다 하여도 원래부터 둘은 서로 다른 성질의 사람임을 우린 잊고 살 때가 참 많습니다. 원래 하느님이 주신 성향이 있음을 잊어버리고 그저 내 뜻에 맞춰주기만을 바라다보니 좋았던 관계가 어그러지고 무시되는 듯 느껴지는 사람들을 보는데요. 우린 독서에서 이미 이런 단어를 발견했습니다.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 의 ‘협력자’ 라는 단어 말입니다. 둘이 한 몸이 되었지만 각각의 성향은 그대로 보존되고 인정해줘야 하지요. 2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만물은 하느님을 위하여, 또 그분을통하여 존재합니다.” 우린 추구하고자 하는 삶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저 한 집안의 평화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통하여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믿는 속에서 모든 공동체가 일치되는 삶 말입니다. 그것을 알 때 서로 다른 성향의 사람이 만나 이뤄간다는 사실을 그야말로 기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데요.
사랑하는 이태원 본당 교우 여러분!
한 가족끼리라도 한 집안끼리도 각기 다른 성향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우린 명절을 통해 체험하였습니다. 그럼 협력자인 우린, 서로에게 무엇을 도와주고 있으신지요. 그저 내 고집만을 강요하고 계신 것은 아니십니까? 차분하게 서로의 성향을 인정해 줄 때, 진정한 평화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