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1주 화요일

2009. 11. 2. 오후 10:4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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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31주간 화요일. 로마서 12,5-16ㄴ;루카 14,15-24

요한복음의 마지막 장에 보면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가 나옵니다. 아침을 먹은 후 주님은 베드로를 붙잡고 물어보십니다.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요. 베드로는 당연히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압니다.” 하자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 라고요.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 물음은 3번이나 똑같이 이어집니다. 그러자 베드로의 표정은 사뭇 슬퍼집니다. 왜 그랬을까요? 자꾸 “...돌보아라~..” 라고 뭔가를 시키시니까 그랬을까요? 아니면 못 믿게 보인 것이 억울해 그랬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라는 자신감을 보여주며 예전과 다르게 커진 베드로의 그릇됨을 보여주는데요. 그렇다면 여러분의 그릇은 어느 정도입니까?

저번 주에 동기신부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만 절 덜컥 동기 회장으로 뽑아버렸습니다. 처음에 든 생각은 ‘이제 좀 쉴 만하니 별 것 다 시키는구나.’ 라는 원망도 있었구요. ‘돌아가면서 하는 거니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 ‘무언가를 맡긴다는 말은 그만큼 믿는다는 말도 되기 때문에 받아들였는데요.’ 한 자리에 대표가 되는 것. 사실 누구나 피하려는 세상입니다. 부담이 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생기는 것도 없는 우리 같은 교회의 봉사직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런 모습을 오늘 복음의 주인공들도 알아챘는지 하늘나라의 잔치가 벌어졌지만 다들 이런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양해를 구하기 시작하였다.” 라고요.

 우리가 가려는 신앙의 비밀은 재미있게도 편한 데서는 찾아지지 않습니다. 뭔가 불편하고 고통을 통해 얻어집니다. 마치 요즘 같은 추위의 세찬 바람을 맞아야 정신이 번쩍 드는 것처럼 그렇게 힘들게 얻어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대다수는 이를 모르고 편한 것만 찾으려 합니다. 그러면서 정작 말로만 십자가의 고통을 운운합니다. 생활 가운데 여러분에게 무얼 맡기려 하는가? 그리고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를 살필 때 나의 그릇의 크기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여러분을 얼마나 필요로 하는 지 알 수 있는데요. 오늘도 피해만 가시렵니까? 아니면 그 속에서 뭔가를 발견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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