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3주간 목요일

2009. 11. 19. 오후 4:4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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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연중 제 33 주간 목요일. 1마카베오 2,15--29;루카 19,41-44

살면서 어느 것 하나에 사로잡혀 열정적으로 사는 사람을 보곤 합니다. 그것이 취미이든 일이든 간에 한 곳에 몰두했을 때 자신도 모르는 힘이 솟아나와 자기를 즐겁게 만들어 줍니다. 그것이 너무 즐겁기에 그 안에서 힘을 느낍니다. 그리고 매몰차게 달려갑니다. 그런데 그 열정, 과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늘 1독서에 나온 마타티아스가 그랬습니다. 당시 배교를 강요하는 분위기에서 꿋꿋하게 이런 말을 합니다. “임금의 왕국에 사는 모든 민족들이 그에게 복종하여 저마다 자기 조상들의 종교를 버리고 그의 명령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하더라도 나와 내 아들들과 형제들은 우리 조상들의 계약을 따를 것이오.” 마타티아스의 이 말은 그저 수구주의나 국수주의의 면은 아닐 것입니다. 마치 주님의 성전 정화 사건을 연상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마타티아스는 무얼 보았기 때문에 “열정이 타오르고 심장이 떨리고 의분이 치밀어 올랐” 겠습니까? 그것은 아마도 오늘 화답송의 후렴구인 “올바른 길을 걷는 이에게는 하느님의 구원을 보여주리라”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의 뜻에 맞게 사는 것이 참 삶이요, 참 구원의 길임을 확신했기에 뜻하지 않게 다가온 고통의 순간에도 의연하게 맞설 수 있었습니다.

이런 그를 보며 반대로 예수님의 모습을 봅니다. 주님은 이런 마타티아스와 반대격인 모습을 보이십니다. 오히려 예루살렘을 보며 슬퍼하십니다. 왜냐하면 율법학자들이 주장하는 것들이 오히려 그들 자신을 옭아매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아는 청년 중에도 아주 급진적인 청년이 하나 있습니다. 너무 한쪽에만 치우쳐져, 말려도 그 말을 듣지 않고, 말을 해도 못 알아듣는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그 자신은 열정에 사로잡혀 있지만 남들이 볼 땐 그 열정이 그 자신을 태워버리고 있음을 모르고 있는 듯 합니다. 우린 결국 균형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람이 왜 나이가 먹어가면서 달라집니까? 우유부단해서가 아닙니다. 그저 나이 들고 힘없어 그런 게 아닙니다. 현명한 시각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난로가 따뜻하다고 껴안고 있을 수 없듯이, 참된 간격을 두며 바라볼 때 참된 그분이 원하심을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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