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2주간 토요일.
옛날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어떤 동네에 구청장이 있었습니다. 이 구청장은 나이도 들면서 이제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야 하겠거니 하면서 재속회인 제3회원에 입회 사인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재속회에 들어가 보니 여러 기도도 시키고, 공부도 하게 만들고, 여러 프로그램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숙제도 있었습니다. 그 숙제 중에 하나는 묵상을 하고 그걸 노트에다 적어오는 것이었습니다. 한 달 후 그 곳의 담당신부님과 면담을 하게 되자 구청장은 이렇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제가 말이지요. 일이 너무 바쁘기 때문에 솔직히 묵상할 시간이 없습니다. 저희 동네에 재개발이 시작되서 말이지요.” 그러자 담당 신부님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그건 핑계인데요?” 말하자 “제가 말이지요. 진짜 시간이 없거든요?” 라고 계속 변명을 해댔습니다. 그러자 이 신부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묵상을 못한다는 생각은 잘못입니다. 진짜 원인은 마음의 동요입니다.” 라고요.
기도를 못한다고 여기는 많은 분들.. 지금 마음이 어디에 가 있습니까?
오늘 복음에 예수님은 낙심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으로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마지막 쯤에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시지 않은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고요.
복음의 재판관은 과부가 귀찮아서라도 들어주었는데 하물며 우릴 사랑하시는 하느님은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느냐는 말씀이지요. 그런데 우린 가끔 앞의 구청장처럼 삽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당신과의 시간을 다른 것으로 돌려버립니다. 그러면서 슬며시 이렇게 이야기하지요.
‘매일미사도 나오고, 로사리오도 많이 바치는데요...’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이 열심히 안 하신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 미사처럼 공동체가 함께 바치는 것도 바라시지만 여러분 개개인과의 만남도 원하십니다. 여러분 개개인이 시간을 어떻게 쓰고 누굴 만나고 무슨 일을 하던간에 그것을 주님과 함께 나누기를 바라십니다. 그런데 우린 그 시간을 그저 나의 것으로만 돌립니다. 그러면서 주님을 잘 못 느끼겠다고 이야기 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3장에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바람은 제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듣고도 어디서 불어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모른다. 성령으로 난 사람은 누구든지 이와 마찬가지다.” 바람같은 성령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린 성령과 함께 사는 이라면 당신이 언제 오시는 가 기다리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마치 오늘 1독서에 “당신의 전능한 말씀이 하늘의 왕좌에서 사나운 전사처럼 멸망의 땅 한 가운데로 뛰어내렸습니다.” 란 표현처럼 말입니다. 언제, 어떻게 오실지 모르는 분이기에 그분을 항상 초대할 수 있도록 나 자신을 만들어가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