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2 주간 금요일 . 지혜 13,1-9; 루카 17,26-37
전 오늘 독서를 묵상한다고 앉아 있으면서 이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에 할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가끔 강론을 쓴다고 앉아 있으면 그 날 성경말씀보다 나의 강론이 더 쉽고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다보면 오히려 성경보다 더 앞서려는 나의 교만도 볼 수 있었던 적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오늘 독서인 지혜서를 읽으면서 내가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말씀을 고스란히 그러면서 더욱 정돈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이런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세상을 연구할 수 있을 만큼 많은 것을 아는 힘이 있으면서 그들은 어찌하여 그것들의 주님을 더 일찍 깨닫지 못하였는가?” 요즘처럼 똑똑한 사람이 넘쳐난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똑똑함의 모습이 비록 그 사람의 실력과 이어지지는 않는 경우가 더 많아 보입니다만 말 하나 잘하는 것만큼은 분명 예전보다 나아 보입니다. 하지만 그 말 속에 자기의 올바름을 표현하기는 하지만 진정한 빛을 못보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빛을 따르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참된 빛을 바라보려 하기보다 세상의 사금파리 같은, 반짝이는 데에 더 치중하는 경우를 봅니다. 우린 예리고의 소경이라는 루카복음 18장의 내용을 압니다. 거기서 소경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하자 예수님은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합니다. 그러자 소경은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라고 이야기 합니다. 여기 앉아있는 우리는 육체의 눈을 가지고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입니다만 우리 아쉽게도 세상의 아름다움에 빠져 겉의 아름다움은 칭송하지만 그것을 만들어주신 하느님의 웅장하심과 아름다움은 잘 잊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해외여행을 가는 분들은 그 이색적인 모습과 찬란한 경치를 보고 감탄을 하지만 그것을 만들어주신 분에 대해서는 감사를 하는 경우가 드문 경우를 봅니다. 많은 과학이 발달하고 더욱 섬세하게 학문은 진행되고 있습니다만 본래 그것을 만드신 분, 그것을 창조하신 분을 찾지 못하고 그분의 고마움을 모른다면 우린 어쩌면 껍데기의 인생을 사는 지도 모릅니다. 우린 진정 참된 것을 얼마나 바라보려 하고 있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