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마리아 대축일
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좋아합니까? 착한 사람?, 잘생기고 멋있는 사람? 그런 것 아닙니다. 다른 것 없습니다. 바로 내 말 잘 들어주는 사람을 제일 좋아합니다. 남편도, 자식도, 그 누구라도 내 말을 잘 들어주길 바랍니다. 이미 남편과 몇 십년을 살았어도, 자식이 가정을 일궈 다 큰 가장이 되었어도 나는 그 사이에 끼어들어 내 말을 찰떡같이 들어주길 바랍니다. 그런데 난 과연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입니까?
오늘 성모님은 마지막에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사실 성모님이 말씀은 이렇게 했지만 원래 당신이 바란 삶은 아니었습니다. 젊은 나이에 얼마나 하고 싶은 것이 많았겠습니까? 그런데 그녀가 자기를 접을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가수 김민기, 시인 김지하의 스승이면서 지학순 주교님과 민주운동을 같이했던 원주에 사는 장일순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밥집을 하는 사람에게 “자네 집에 밥 잡수시러 오는 사람이 자네의 하느님이야, 그런 줄 알고 진짜 하느님이 오신 것처럼 요리를 해서 대접을 해야 해. 장사 안 되면 어떻게 하나? 그런 생각은 일절 할 필요가 없어. 하느님만 섬기면 하느님이 다 알아서 먹여주신다 이 말이야.” 나와 같이 살고, 나와 이야기 하는 그 사람을 과연 여러분은 그렇게 하느님처럼 떠받들어 주십니까? 성모님이 그런 용단을 내리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사람의 말을 하느님처럼 받아들이는 모습 말입니다.
마태오 복음 7장에 보면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라고요. 주님이 원하는 진정 큰 사랑을 하고 싶습니까? 그거 큰 것 아닙니다. 그렇게 바라는 것을 해줄 때 이뤄지는데요.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어땠습니까? “너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는 질문에 “당신과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뱀이 저를 꾀어서...” 라 핑계 대기 바쁩니다. 당신이 바라는 삶은 2독서에 나옵니다.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없는 사람이 되게 해주셨습니다.” 흠없고 거룩하게 살고 싶으십니까? 먼저 그들이 원하는 것을 봐주십시오. 그러면 자연히 진정 큰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