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2주간 금요일
많은 분들이 고해성사를 보시면서 자신의 죄를 잘 뉘우치고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하는 죄를 잘 살펴보면 사람과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면서 남을 부러워하고 자존감이 낮아지는 자신을 바라보며 힘겨워하시는데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말한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요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말한다.’ 우린 하느님이 내신 여기 있는 이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봐야 하는데요. 세례자 요한은 금욕과 고행을 하며 주님을 기다린 지도자였습니다. 그래서 자기 다음으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이제 곧 종말이 다가오고 심판이 일어날 것이다’ 여겼지만, 나중에 예수님이 자신과 전혀 다르게 가르치고 계시다는 사실에 난감해하며 제자에게 물어보게 합니다. ‘오실 분이 당신이십니까? 아니면 더 기다려야 합니까?’ 라고요. 세례자 요한의 시대가 끝난 후, 예수님은 요한과 달리 금욕을 하기보다는 가난한 이들과 어울리고 잔치에도 잘 참여하는 모습에, 먹보요 술꾼이라는 소리까지 듣습니다. 계명을 어기지는 않으시지만 율법학자들의 눈에는 방만하다고 여깁니다. 그들의 눈에는 새롭게 여겨졌으니까요. 예수님은 극단적인 고행으로 사시지 않으셨고, 음식 먹는 문제도 자유롭게 판단하셨습니다. 이제껏 보아온 예언자는 왕의 일에 간섭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이야기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랬기에 세례자 요한에게는 금욕적이라 욕하더니 이제는 예수님이 죄인들과 거리낌 없이 대하시자 마구 비난을 합니다. 그렇다면 그런 비난을 들으시는 것을 아시면서도 왜 당신은 계속 그렇게 사셨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생활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분은 남들이 죄인이라 일컬어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먹어도, 하느님을 따르며 균형감을 가지며 사셨기에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우린 잘살고 있으면서도 남의 판단을 두려워합니다. 이것이 예수님과 우리의 차이인데요. 이제 여러분께 이렇게 여쭤봅니다. 과연 두려워 할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 외의 것 때문에 두려워하고 계십니까? 하느님을 잘 따르고 있다면 그 확신으로 인하여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